[詩가 있는 공간] 나무 밑동의 동그랗게 눈 녹은 자리

입력 2017-01-3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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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겨울산에 가면

나무들의 밑동에

동그랗게 자리가 나 있는 걸 볼 수 있다

자신의 숨결로 눈을 녹인 것이다

저들은 겨우내 땅 속 깊은 곳에서 물을 퍼 올려

몸을 덥히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가까이 가 보면

잎이 있던 자리마다 창을 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어디선가 “봄이다!” 하는 소리가 들리면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겨울에 둘러싸인 달동네

멀리서 바라보면 고층빌딩 같은 불빛도

다 그런 것이다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새해 들어 영동지방에는 큰 눈이 왔다.

멀리서 탱크가 지나가듯 겨울 우레까지 데리고 와 퍼부어댔다.

한나절 만에 무릎이 빠질 정도로 쌓인, 그야말로 폭설이고 대설이었다.

산 아래 마을에서는 먹을 것을 찾아 나섰던 고라니가 덫에 걸리기도 하고 외딴 농가에는 멧돼지가 마당까지 내려와 씩씩거렸다고 한다. 헛간의 시래기나 무 구덩이라도 헤집어 나누어 먹자는 것이다. 아침에 나가 보면 눈으로 뒤덮인 마을의 담벼락에서 담쟁이덩굴 열매를 차지하기 위하여 참새들과 직박구리들이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눈이 많이 쌓이고 추워도 며칠 지나면 나무 밑동에는 동그랗게 눈 녹은 자리가 생겨난다. 나는 그걸 나무들이 몸으로 눈을 녹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파리를 떨군 나무들은 여름처럼 많은 물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땅 속 깊은 곳에서 물을 퍼올려야 몸을 덥힐 수 있다. 일하는 그들의 더운 숨결로 눈이 녹은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다. 잎이 떨어진 자리마다 두텁고 투명한 방한용 옷을 입은 싹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무들의 창인 것이다. 그들은 그 창을 통하여 대기의 냄새를 맡고 대지의 발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멀리서 누군가 “봄이다!” 소리치면 일제히 문을 열고 나갈 것이다. 실제로 누구보다 일찍 피는 매화나 동백은 한겨울에 이미 꽃봉오리를 다 만들어놓고 봄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만이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도 그렇다.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귀 기울이고 내다보는 창이 있는 것이다. 달동네는 어느 동네보다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다. 그래서 야경도 아름답다. 층층이 들어선 집들의 창마다 켜진 불들이 거대한 빌딩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불빛 속에서 집들도 꿈꾸며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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