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제국의 위안부’ 무죄가 일깨운 것

입력 2017-01-3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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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설연휴 직전에 아주 중요한 판결이 하나 나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5일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재판부는 “이는 표현의 자유와 가치판단의 문제로, 시민과 전문가들이 상호 검증하고 논박할 사안이지 법원이 형사처벌할 게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학문적 표현의 자유는 옳은 것뿐 아니라 틀린 것도 보호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한마디로 국내에서 근래 보기 드문 이성적 판결이었다.

논란이 된 부분은 ‘자발적 위안부’ ‘매춘’ ‘동지적 관계’ 등의 일부 표현이다. 이 책은 2013년 8월 출간된 이후 위안부의 성격과 그 동원 양태, 일제와 위안부의 관계 등을 둘러싸고 격렬한 비난과 논란에 휩싸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듬해 6월 박 교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출판·판매금지 가처분 소송도 냈다.

그로부터 1년 뒤 책은 34곳을 삭제한 채 출판됐지만 검찰은 2015년 11월 명예훼손 혐의로 박 교수를 기소했다. 지난해 1월 민사재판에서는 9000만 원 배상 판결이 내려졌고, 12월 형사재판에서 검찰은 3년 징역을 구형했지만, 1심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검찰이 박 교수를 기소했을 때 지식인 190명이 검찰을 비판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은 “종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 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우려와 지적에 대한 대답이 무죄 판결 선고문인 셈이다.

사실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에 관한 한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친일파’라는 굴레 때문에 움츠리고 주눅 들어 제대로 학문 연구를 하지 못하거나 객관적 발언도 삼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 교수는 위안부 연구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고, 순진무구한 소녀들을 일제가 강제로 끌어간 게 위안부 동원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돼온 고정관념을 깨고 나섰다.

박 교수는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 세력을 확장하려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 희생의 문제”라며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보상조치를 평가하면서도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해온 일본을 향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책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적대감과 강한 선입견에 의한 오독’이 심해 그동안 피해 할머니들보다는 지원단체나 학계·언론·정치권에 맞서 싸워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명예훼손 표현으로 지적된 35곳 중 5곳이 사실 적시, 나머지는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적게는 1만5000명, 많게는 32만 명에 이르는 위안부 전체에 대한 기술을 한 것이므로 피해자를 특정해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박 교수는 민사재판에서 받은 위자료 지급명령도 중지를 신청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이 즉각 항소했으므로 이 다툼은 이제 2막이 시작된다. 쌍방에게 다 힘든 일이겠지만 이왕 벌어진 쟁송이니 대법원까지 다투어 좋은 판례가 새로 수립되기를 기대한다. 1심 결과를 보고 일본 언론은 자신들이 승리한 것처럼 들떠 보도하고 있지만, 이 사안의 판단에는 1심 재판부의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끝까지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옳은 의견만 보호한다면 의견의 경쟁을 통한 학문적 표현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피고인의 주장에 대해 합리적 경쟁과 논박을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도출해낼 능력이 있다.”

참 좋은 말이다. 한국 사회는 이런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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