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학업체가 트럼프 행정부의 첫 제물이 되면서 올해 국내 증시 상승을 이끌 주도주로 꼽혀왔던 화학주가 일제히 하락세를 그렸다. 시장 일각에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지난달 31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주요 화학업체의 주가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LG화학은 전 거래일 대비 2.96%(-8000원) 떨어졌고 롯데케미칼과 한화케미칼도 각각 4.08%, 4.22% 하락했다. 애경유화는 7.47% 급락하며 업종 내에서 가장 낙폭이 컸다. 이에 코스피 화학업종지수도 전 거래일 대비 62.59포인트(-1.21%) 떨어진 5091.29에 마감했다.
화학 업종의 동반 약세는 설 연휴 기간 미국에서 날아든 ‘돌발변수’의 영향이다. 지난달 27일 미국 상무부가 LG화학과 애경유화가 수출한 가소제(DOTP)에 각각 5.75%, 3.96% 예비관세를 물리기로 결정한 것.
미국 내 유일한 가소제 제조업체인 이스트맨 케미칼이 지난해 6월 미국 정부에 요청한 내용을 이번에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 정부가 한국산 제품에 반덤핑 예비관세 부과 판정을 내린 첫 사례다. 미 상무부는 아울러 향후 한국에서 가소제를 제조·수출하는 모든 업체에 4.47%의 반덤핑 예비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가소제는 고온에서 플라스틱을 만들 때 성형하기 쉽도록 돕는 화학물질로서 국내에서는 LG화학, 애경화학, 한화케미칼 등이 주로 생산하고 있다. 현재 LG화학과 애경유화가 미국에 수출하는 가소제는 각각 100억 원, 200억 원 규모다.
이번 조치로 국내 화학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 수출하는 가소제 비중 자체가 극히 적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23일 중국산 타이어를 시작으로 한국, 인도 등으로 반덤핑 관세 품목을 확대하고 있는 점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화학 업종의 하락보다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도 “가소제는 수출 비중 자체보다도 미국 시장 내 점유율에 의미가 있던 품목”이라며 “미국이 한국산 수출품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했다는 ‘상징성’을 무겁게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 지난 2015년 미국에 2만5800톤, 3122만 달러(약 365억 원)어치의 가소제를 수출해 미국 수입시장 내 점유율 1위(55.9%)를 기록한 바 있다.
화학주를 사들였던 외국인과 연기금 등 ‘큰손’들도 단기적으로 손실을 입게 됐다. 그간 화학 업종은 올해 국내 증시를 이끌 주도주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작년 4분기(10~12월) 이후 외국인과 기관 등의 매수세가 지속됐다. 올해 외국인은 LG화학(954억7500만 원), 롯데케미칼(248억500만 원), 애경유화(6억200만 원) 등을 사들였고, 국내 연기금도 같은 기간 LG화학(289억9900만 원), 한화케미칼(274억400만 원) 등을 순매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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