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환의 돈이야기] 메디치 가문…금세공업자…‘은행의 원조’ 두가지 설

입력 2017-02-01 10:30 수정 2017-02-0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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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은행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BC 17세기에 만들어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여기에는 재산의 단순한 기탁 외에도 기탁된 재산의 운용이나 그에 따른 이자에 대한 규정도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은행과 유사한 기능과 체제를 갖춘 기관이 나타난 기원에 대한 설은 대체로 다음 두 가지로 나눠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대한 문화적 용광로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초기의 대금업과 환전업은 르네상스의 주역인 메디치(Medici) 가문에 의해 은행업으로 진화를 하게 된다. 메디치 가문은 은행을 조직적으로 대형화함으로써 규모의 경제와 위험의 분산을 이루었다. 이는 위험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함을 의미한다. 일개 소규모 환전상 내지 대부업체에서 대형은행가로 성장한 메디치 가문은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유럽의 경제와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은행’이라는 용어도 이즈음에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본다. 당시 이탈리아는 국제무역이 성행했다. 그래서 많은 자금의 유통과 환전업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환전업무와 자금거래를 하던 금융업자들은 별도의 점포를 차리고 영업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노상에서 긴 탁자를 펼쳐 놓고 일을 했다. 이 탁자를 ‘반코(banco)’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진화해 오늘의 은행을 뜻하는 ‘뱅크(bank)’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금융업자들도 파산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돈을 맡겼다가 날린 사람이 너무 화가 나서 탁자를 부숴 버렸는데, 이 ‘부서진 탁자(banco rotto)’에서 ‘파산(bankruptcy)’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근대 은행 탄생에 관한 또 다른 설은 17세기 영국의 금세공업자(goldsmith)들로부터 그 자취를 찾고 있다. 당시에는 금과 은 등 귀금속이 화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은 기본적으로 부피와 무게가 있어서 이동과 보관에 어려움을 겪었고 간혹 중량과 순도 문제로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이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금세공업자들에게 자신의 금을 맡겼다. 금세공업자들은 보통 튼튼한 금고를 가지고 있었기에 안전한 보관이 가능했고 순도 또한 보증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세공업자들은 금을 맡긴 사람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보관증을 발급해 주었다. 이처럼 금보관이 보편화되자 사람들은 금세공업자들이 발행한 보관증이 상거래에 매우 요긴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금을 직접 주고받던 거래보다 보관증만을 교환하는 게 더 용이했던 것이다. 금세공업자들을 믿은 사람들은 금의 존재 유무를 일일이 확인하지도 않았다.

일부 금세공업자는 이 보관되어 있는 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수수료를 받고 빌려주는 아이디어를 내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보관증으로 거래를 할 뿐 실제 금을 되찾으러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에 금고에는 금이 항상 쌓여있는 채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금세공업자들은 어차피 금고 속에 금이 잠들어 있을 바에야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 주고 그에 대한 대가를 챙기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욱이 실제 금을 빌려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증서만 발행하면 그만이었다. 이 보관증이 지금의 통화기능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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