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페이’로 택시 타고 영화 보며 커피 홀짝
VR 쓰고 안방서 쇼핑… 세뱃돈도 모바일로
스마트폰 앱으로 금융거래 ‘지갑 없는 세상’
“은행 업무는 필요하지만 더는 은행에 갈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오늘날을 예언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여전히 금융 거래를 하지만 그 모습은 과거와 같지 않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핀테크(FinTech)’의 발전이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현금 없는 사회’는 이미 14억 인구의 중국 대륙을 묘사하는 말이 됐다.
중국 상하이에 사는 왕서방은 눈을 뜨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알람을 잘못 맞춘 바람에 평소보다 30분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황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집은 왕서방은 ‘알리페이’ 앱으로 택시를 호출한다. 택시가 올 때까지 양치질과 세수, 옷을 갈아입고 튕겨 나오듯 집을 나선다. 마침 택시가 집앞에 도착하고 있다. 왕서방은 늦지 않고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다리던 점심 시간에 동료와 초밥집을 간 왕서방은 지갑을 집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지만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O2O(온라인 투 오프라인) 서비스를 이용해 앱으로 결제했듯, 휴대전화에 깔린 알리페이 앱으로 초밥값을 계산한다. 잠이 쏟아지는 오후 시간을 견디기 위해 스타벅스로 향한 왕서방은 익숙하게 바코드 스캐너에 휴대전화를 대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남은 점심 시간은 20분. 왕서방은 오늘은 잊지 말고 공과금을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1호 인터넷 전문은행 ‘위챗뱅크’를 이용해 공과금 납부를 1분 만에 끝낸 왕서방은 잠시 눈을 붙이며 모자란 잠을 취한다.
오후 회의시간, 다음 달 서울 출장 행이 결정됐다. 동료가 환전은 어디서 할 거냐고 물었지만 왕서방은 고개를 저었다. 현금은 물론 카드도 가져가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을 제외하고 알리페이 매출·가맹점 수 1위 국가이기 때문에 휴대전화 하나면 충분하다.
퇴근한 왕서방이 향한 곳은 영화관이다. 예전에는 종이 표를 뽑아 상영관 앞에서 직원에게 확인을 받곤 했지만 언제부턴가 상영관으로 바로 향한다. O2O로 결제를 끝냈기 때문이다. 말없이 휴대전화 액정을 직원에게 보여주고 캄캄한 극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집에 돌아온 왕서방은 서울 출장을 위해 작은 캐리어를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지갑을 챙겨 나가거나, 노트북을 켜는 대신 스키 고글처럼 생긴 VR(가상현실) 기기를 쓴다. 알리바바그룹의 VR 쇼핑 플랫폼 ‘바이플러스’를 이용해 캐리어를 사려고 마음먹은 왕서방은 360도 전후좌우로 물건을 꼼꼼히 살펴본다. 직접 만져볼 수는 없지만 인터넷 쇼핑보다 더 세심히 물건을 살펴볼 수 있어 종종 애용한다. 소프트커버 캐리어를 사고 싶은 왕서방은 도우미 로봇의 안내를 받아 원하는 크기와 재질의 모델을 소개받는다. 30분 정도 쇼핑을 한 뒤 물건을 선택한 왕서방은 결제를 마치고 VR 기기를 벗는다.
이제 곧 춘제(중국의 설) 연휴다. 왕서방은 조카들에게 줄 세뱃돈을 미리 준비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중국판 카카오톡인 텅쉰의 ‘웨이신’을 통해 ‘디지털 홍바오(세뱃돈)’를 주고받으면 된다. 홍바오는 명절의 새로운 놀이가 됐다. 단체 메신저에서 별도 금액을 설정하지 않고 각각 다른 금액의 세뱃돈을 뿌릴 수 있다. 무작위로 세뱃돈을 나눠 받거나 익명으로 세뱃돈을 줄 수 있어 오락처럼 즐긴다.
왕서방의 하루는 중국 핀테크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씨티그룹의 최근 핀테크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9월 중국은 전 세계 핀테크 투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벤처 캐피털 투자 부분에서 약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벤처 캐피털 투자의 46%를 중국이 차지했는데, 이는 2015년 19%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중국 핀테크 시장의 가치를 2조2000억 달러(약 2060조 원)로 추산하는 이유다.
중국 내 휴대전화 결제는 작년 1억9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발전 속도인데, 2020년에는 3억3200만 달러로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비주얼캐피털리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신생기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이 핀테크 분야에서 27개 있다. 이 중 중국 기업은 8개다. 8개 기업을 합친 가치는 964억 달러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