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에 진학하자 ‘아버지의 카메라’는 내 카메라가 됐다. 아버지의 카메라가 장롱에서 나와 내 책상으로 자리를 옮기자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그냥 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만의 ‘특별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아버지의 직업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 피사체가 되면 좀 더 좋은 사진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무실은 명동 한복판에 있는 큰 건물 지하에 있었다. 퀴퀴한 습기와 오래된 책상, 연장들 그리고 공장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은 대형 장비들과 쇠붙이들이 그곳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건물을 관리하는 기술자였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직업을 눈으로 확인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그 자체로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땀 흘리는 노동의 현장을 바라보는 일은 감동적이면서도 애잔하다.
대상이 가족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날 이후 나는 노동의 현장이야말로 삶 그 자체라고 확신하게 됐다. 그리고 카메라는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건 그 자체로 내 일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나는 최근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이라는 책의 사진 작업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아버지들의 삶과 노동을 느꼈다. 이발사, 시계 수리 전문가, 세탁소 주인, 양복점 재단사 등 대부분 한두 평의 작은 공간에서 쉼 없이 반복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가족을 위해 힘들고 지루한 노동도 마다 않고 땀 흘리고 애쓰던 사진 속 아버지가 한없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