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스피 돌파가 쉽지 않은 또 다른 이유

입력 2017-02-09 11:10 수정 2017-02-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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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자본시장부장

“이건 뭐 다 매수네?” “아, 네. 적극매수로 적힌 것만 진짜 매수 추천으로 보시면 됩니다. 매수로 쓴 것은 잘해야 보유 정도로 생각하십시오.”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건네준 리포트 목록을 들춰 보던 한 기관투자가가 매도의견이 하나도 없음을 꼬집으며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둘 다 담배를 피우는 비교적 편한 자리였지만 애널리스트의 두 손은 다소곳이 앞으로 모아져 있었다.

최근 금융당국이 증권사 리포트에서 매도의견 비율을 높이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사실상 ‘을(乙)’ 입장에 있다 보니 여전히 매도의견을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애널리스트가 을이라고요? 병(丙)이면 다행이게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을이란 평가마저 과분하다는 셈이다.

이렇게 양산한 보고서를 액면 그대로 믿고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결국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다.

코스피지수가 지난 2일 장중 기록한 2092.45 포인트 이후 하락하는 모양새다.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발 호재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삼성전자 주가의 고공행진 등에 힘입어 박스피(코스피+박스권) 상단 2100선을 넘는가 했더니 다시 고배를 마신 셈이다.

박스피 고점에 도돌이표라도 있는 듯 번번이 되돌림을 하는 시간이 어림잡아 햇수로 5년여다. 같은 기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여덟 번에 걸쳐 3.25%에서 1.25%로 2%포인트나 인하했고, 정부도 2013년, 2015년, 2016년에 각각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돈 풀기에 나섰음에도 기록한 초라한 성적표다.

이 같은 지독한 박스피의 원인으로 혹자는 고령화를, 혹자는 2% 중반대로 추락한 경제성장률(GDP)을, 혹자는 13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꼽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앞서 말한 믿음, 즉 깨진 신뢰이지 않을까 싶다.

정부와 증권업계는 1989년 증시 활황과 맞물려 특히 개인투자자를 현혹하는 일들을 꽤나 많이 벌여 왔던 게 사실이다. 잊을 수 없는 당시 TV 광고 중 “난 코스닥에도 투자해”라며 코스피에 이어 코스닥에도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분산투자라고 외쳤던 게 있다. 같은 성격인 주식에 투자하면서 분산투자라니,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게 전 국민을 투기 열풍으로 몰았고, 주식에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투기성이 더 강한 선물과 옵션으로 내몰렸다. 2000년대 거래 규모로는 부동의 세계 1위를 기록했던 파생상품시장의 이면이기도 하다.

“이젠 해외투자다”라며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브라질로 눈길을 돌리게 했지만 트랙레코드는 대부분 손실로 채워졌다. 간접상품으로 관심이 옮겨지고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중국 증시 폭락으로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손실이 컸던 것은 뼈아픈 기억이다.

결국 단기부양책에 몰두했던 정부는 투자가 아닌 투기 심리를 부추겼고, 겉으로는 투자자를 위한다는 증권업계도 실제로는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 그 결과 지금 주식시장에 남은 것이라고는 대선을 앞둔 테마주의 급등락과 청산이 예고된 한진해운 주식에 대한 폭탄 돌리기뿐이다. 개인투자자가 주를 이루는 코스닥시장은 되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탄핵정국을 보면서 국민이 외쳤던 일성은 “이게 나라냐”라는 것이었다. 아마 그 이면에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실망감이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주식시장으로 적용해 보면 투자자들은 “이게 증시냐”를 외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거대 담론일 수 있는 정치나, 한낱 투자나 신뢰를 심어주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작은 신뢰부터 쌓는 노력이 절실해 보이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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