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가총액 상위기업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이 시장 기대치(컨센서스)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코스피를 이끄는 대형주들의 성적표에 대한 실망감이 증시 조정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시총 상위 20위권 내(우선주 제외) 기업 가운데 8일 기준 4분기 실적을 발표한 17개 기업 중 11곳이 컨센서스에 미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전력(-47.1%), 포스코(-32.4%), 아모레퍼시픽(-29.6%), 현대차(-29.1%), 현대모비스(-22.9%), SK텔레콤(-17.1%), 삼성생명(적자확대) 등 7곳은 컨센서스를 10% 이상 밑도는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특히 역대 최장기 파업 등 악재로 타격을 입은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현대차의 4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6% 감소한 1조210억 원에 머물렀다. 현대모비스와 기아차의 영업이익 역시 각각 전년동기 대비 감소한 6800억 원과 5320억 원에 그쳤다.
아모레퍼시픽은 내수 부진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중국의 경제 보복이 겹치면서 컨센서스를 400억 원 이상 밑돌았다. 지난해 3분기에 이은 2분기 연속 어닝 쇼크다.
컨센서스와 실적간 괴리율이 가장 큰 곳은 한국전력이다. 당초 2조3900억 원대 영업이익을 기대했지만 실제 실적은 1조2600억 원으로 절반에 그쳤다.
포스코는 매출액 15조170억 원으로 컨센서스를 10% 이상 웃돌았지만 영업이익이 4720억 원으로 기대치(6980억 원)에 미치지 못했다. 원료탄과 철광석 등 원재료 급등에 따른 수익성 하락에 따른 결과다.
컨센서스를 10% 이상 상회한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한 기업은 삼성전자(11.2%), SK하이닉스(13.4%), 신한지주(17.8%), 롯데케미칼(10.9%) 4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수출기업의 호실적에는 4분기 원화 약세 효과가 적잖게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증권가에서는 시총 상위 기업들의 신통찮은 성적표에 코스피의 ‘박스권 탈피’ 염원이 또 다시 멀어졌다고 분석했다. 일회성 비용 등을 고려하더라도 업종 대표주를 중심으로 줄줄이 어닝 쇼크가 이어진 점은 당분간 코스피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여기에 원·달러 환율 불확실성과 대외 정치적 변수까지 겹치면서 코스피 지수가 최저 2000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김요한 유화증권 연구원은 “실적 부진으로 촉발된 코스피 조정이 오는 4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환율 변동성에 대한 부담도 커지면서 우리 증시의 상승세를 이끌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망감이 우리 증시에 충분히 선반영 돼 우려 수준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시장 관심은 이미 실적에서 프랑스 대선 등 글로벌 이벤트로 넘어갔다”며 “최근 주가 조정은 트럼프 정책 기대감 등에 대한 차익실현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