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 방문 두 번째 날인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휴양지 플로리다 팜 비치에서 골프 라운딩을 즐기며 우의를 다졌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이자 롤 모델인 기시 노부스케도 1957년 일본 총리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워싱턴D.C 인근에서 골프를 했다. 아베 총리로서는 60년 만에 골프 외교의 대(代)를 잇게 된 셈이다.
그러나 두 정상의 골프 라운딩은 전례없는 철통 보안 속에 이뤄졌다. 골프장 건물 안의 창문은 온통 검은 색 비닐 시트로 뒤덮여 밖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했다. 이는 취임한지 약 3주 된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온갖 불안 요소를 반영하는 것으로, 본의 아니 게 미·일 정상의 ‘밀월관계’를 부각시키게 됐다.
12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마라라고 별장 인근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장’에서 골프 라운딩을 즐겼다. 이 골프장은 골프의 제왕 잭 니클라우스가 디자인했다. 빛나는 녹색 잔디에 절묘하게 배치된 워터 해저드와 흰색 벙커가 아름다움을 더하지만 난코스로 정평이 나있다.
원래 이날 라운딩에는 아키에 여사와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도 동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침에 일정을 바꿔 아키에 여사는 멜라니아 여사와 골프장 인근에 있는 일본 정원 ‘모리카미 박물관’을 방문하느라 골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두 정상은 보통 골프장의 1.5배 크기에 해당하는 총 27홀을 돌았다. 플레이 중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트윗과 함께 아베 총리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동행한 미국과 일본 언론사 취재진은 무시하고, 골프 모습을 보도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한 백악관 출입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골프장의 창문이 검은 비닐 시트로 덮여 있어 밖을 내다 보지 못하게 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미국 입국 제한 문제 등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각국에서 반발이 거센 가운데 호화 별장에서 아베 총리를 접대하고 골프까지 하는 풍경이 보도되면 미국 언론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조치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미국 대선 기간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골프광인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일본 입장에선 트럼프의 이런 조치에 내심 반기는 눈치다. 앞서 아베 총리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에게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골프를 즐기는 모습이 대대적으로 전 세계에 보도되면 트럼프와 싸잡아져서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이번 골프 외교가 양국 정상의 우의를 다지는 데에는 큰 성과가 있었음이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좋게 골프 라운딩을 즐기는 모습이 공개되지 못하는 데에서 양국 관계의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