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빛과 어둠을 보다

입력 2017-02-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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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며칠 전 일본의 나오시마(直島) 섬에 갔다. 오직 하나,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지하미술관을 꼭 보고 싶었던 것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4시 20분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는 요란을 떨면서도 그 미술관을 본다는 기대감으로 견디며 갔다.

바다에 인접한 세토우치(???)의 자연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만든,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 버려야만 했던 세토우치의 자연을 죽음에서 부활시킨 자연으로 불러도 좋을 듯한 미술관을 마음으로 그리며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우리나라 혜화동에도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나는 좋아한다. 그 건축물에 들어가면 왠지 인간이 압도되는 듯하다가도 겸손해지고 겸손해지다가 높고 긴 콘크리트 벽에 서면 무엇인가 ‘넘어서려는’ 의지가 성큼 일어서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의 주요 소재는 콘크리트와 철 유리 나무인데 딱딱함과 유연함을 함께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미술관으로 숨을 죽이며 들어갔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이, 손끝이 가늘게 떨려 왔다. 역시 묵직한 침묵으로 압도되는 콘크리트 벽을 옆으로 두고 걸으면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나오고, 월트 드 마리아의 작품이 있고, 제임스 터렐의 빛을 보게 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없는 모네의 대작 ‘수련’도 있다. 장소에 맞춘 터렐의 작품은 온몸을 서늘하게 멈추게 하면서 신비하며 마리아의 공간 배치는 잠시 오래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낸다. 보는 순간 자아의 긴 줄을 잡아당길 듯한 묘한 감정을 들추어 주는 긴장을 맛보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아니 이게 다야? 나는 마음으로 소리쳤다. 밖으로 나와 엽서 몇 장을 사면서도 왠지 너무 작은 미술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걸 보려고 새벽부터 그 야단법석을 했었나? 그리고 다음에 미술관 바로 옆 안도 다다오의 오직 하나밖에 없는 목조 건축물 안에 설치된 터널의 빛과 어둠을 경험하면서도 ‘이게 뭐야?’ 하고 나는 혼자 궁시렁거렸다.

그 건물은 입구부터 이미 너무나 어두워 손톱도 들어가지 않는 딱딱한 어둠 속으로 들어서게 돼 있다. 모두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이다. 정말 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흐릿한 두 개의 작은 조명이 아슴하게 나타나고 드디어 저 벽 쪽에서 네모의 아슴아슴한 빛이 느껴진다. 그렇다. 그것은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빛이다. 보는 체험이 끝나고 그 네모를 만지게 하는데 바로 그 네모는 뚫려 있는 벽이었다. 밖이었던 것이다. 어둠과 빛은 하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어둠과 빛의 집을 나오면 주변엔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노란 호박과 붉은 호박이 있다.

그렇다. 그 해변은 모두 미술관이었던 것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그리고 그 주변을 도는 모든 사람과 하늘과 땅 사이의 허공이, 식당과 카페까지 모두 미술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놀라움으로 우뚝 섰다. 지추미술관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 서서히 배가 차오르고 배가 불러왔다. 그득하고 꽉 차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배가 부르다.

제자 하나가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아프지 마시고 많이 웃으세요.” 나는 지금 아픔과 웃음의 모순을 빛과 어둠으로 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공존이다. 삶의 뜨거운 공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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