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이해하기 ➂] '막말 논란' 김평우 변호사 변론, 무엇이 문제?

입력 2017-02-24 17:42 수정 2017-02-2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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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대리인인 김평우 변호사가 지난 22일 열린 16차 변론 기일에서 사실상 재판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국회 의결 절차가 잘못됐으니 심판 시작이 옳은가부터 다시 따져보자는 겁니다. 이 주장은 탄핵심판 절차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이고, 과연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김평우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김평우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김평우 변호사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각하 결정을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각하 결정은 탄핵 인용이냐 기각이냐를 아예 판단하지 않고 심판을 끝내는 것을 말합니다. 탄핵소추 사유는 13가지에 달하는데, 각 소추사유마다 표결을 해야지 하나로 묶어서 탄핵소추 여부를 표결한 것은 잘못이라는 게 요지입니다. 국회가 탄핵소추 의결을 하는 절차가 잘못됐으니 헌재가 그 점을 확인하고 본안판단을 하지 말아 달라는 거죠.

이번 재판에서 국회 소추 의결 절차를 다투지 않게 된 것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의 선례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선례와 같이 양 당사자의 동의 하에 바로 본안판단으로 들어갔습니다. ‘절차문제는 뒤로 하고 진검승부를 해보자’는 강일원 재판관의 말도 이 때 나왔습니다. 절차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2004년에 이미 선례가 나온 것이니 불필요한 과정을 다시 거치지 말자는 겁니다. 9명의 전원재판부가 각하여부를 검토해 선례를 따르기로 한 것인데도 굳이 양 당사자의 확인을 얻은 것은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죠.

김평우 변호사는 오히려 이 점을 문제삼아 재판을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헌법재판 절차에 관한 문제는 양 당사자가 동의했다고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분권 주의는 민법에서나 쓰는 것’이라며 재판부를 비판합니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면이 있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재판부가 절차 문제를 쟁점화 하지 않은 것은 9인 재판관 협의를 거쳐 2004년 판례를 따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측도 설명을 듣고 주장을 철회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다시 2004년 사건은 이번과 본질적으로 다르므로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선례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사건 본안을 놓고 본다면 이 말이 맞을 수 있습니다. 당시 노 대통령 탄핵은 선거중립 의무 위반 부분이 주된 내용이었고, 이번 사건은 뇌물수수와 권한남용 등 여러 쟁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국회 의결 '절차'는 동일합니다. 그 때도 탄핵심판 사유를 일일이 표결하지 않았고, 대통령의 소명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법사위 차원의 조사도 없었습니다. 김평우 변호사가 주장하는 절차 문제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일한 셈입니다. 오히려 2004년 탄핵소추 의결 때는 국회 경호권이 발동되면서 야당 의원들이 강제로 끌려나가 절차적 문제 소지가 더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적법절차의 원칙이란,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기관 간의 다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2004년 판단의 골자입니다. 의결 자체는 정치적 영역이고, 이미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넘어왔으면 헌재가 소추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선례는 지금 재판부가 판례 변경을 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참조할 수 있는 것이죠.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6차 변론이 열린 가운데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제16차 변론이 열린 가운데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평우 변호사의 황당한 주장은 증인신청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는 재판부가 선례를 따르기로 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재판부의 판단에 무조건 동의할 것이라면 법률대리인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의제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하지만 김평우 변호사는 재판부의 판단을 반박하는 논거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재판부의 판단이 옳은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헌법학자를 불러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헌법학자 허영 선생을 증인으로 정식 신청했습니다.

우리는 왜 재판을 받을까요. 법대에 앉은 재판관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판관들은 무결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능력자라서? 아닙니다. 재판관들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재판관들에게 권리를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들이 임명될 때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확보된 민주적 정당성이라고 부릅니다.

법률 대리인이 재판부 판단을 수긍할 수 없을 때에는 논리적으로 반박을 해야 합니다. 김평우 변호사처럼 ‘재판관들이 독단적이어서 잘못 판단할 수 있으니 헌법학자를 데려다 검증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사법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헌법학자는 아무리 훌륭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도 사법의 영역에서 판단할 권한이 없습니다. 다만 학자로서 견해 표명을 할 수 있을 뿐이죠. 이것은 법적인 효력이 없습니다. 국민은, 그리고 우리헌법은 임의로 선택한 학자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는 절차를 두지 않았습니다. 김평우 변호사 주장대라면 재판부는 일일이 학자나 다른 전문가를 불러 검증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상 재판을 하지 말자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당연히 재판부는 증인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재판부가 아무리 공정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한들, 재판부 스스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판단할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김평우 변호사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재판관들의 사법권이야말로 ‘처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평우 변호사는 탄핵소추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하도록 한 헌법 65조도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 자체가 위헌이라는 주장은 할 수 없다는 게 교과서에도 나오는 판례 입장입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근거로 법률의 효력을 없앨 수 있을 뿐이지, 국민이 직접 제정한 헌법의 효력을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 선례는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헌법에 집어넣은 국가배상금지 조항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헌법조항 때문에 지금도 군인들은 임무 수행 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더라도 제대로 된 배상을 받지 못합니다.

법률 대리인은 재판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헌법이 정한 바에 의해, 합리적으로 주장해야 하겠죠. 이것을 정치하게 펼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법은 변호사를 반드시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평우 변호사의 이 날 변론은 정치인의 연설은 될 수 있어도, 법률가의 변론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상적인 변론은 헌법이 정해놓은 시스템을 존중하는 영역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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