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3월 새 학기를 맞이하듯

입력 2017-03-0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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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었다. 우리가 봄을 기다린 마음까지 합친다면 어느새 그 봄이 아주 깊숙이까지 들어온 기분이다. 그러나 아직 바깥 날씨는 어떤 날은 매섭고, 또 어떤 날은 더없이 온화하다. 이러다가 갑자기 눈이 오기도 한다. 내 고향 대관령 아랫마을은 마당에 매화꽃이 핀 다음에도 눈이 내리곤 했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 학교 개학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눈이 펑펑 내려 며칠 학교를 가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면 학교 입학식까지 마친 다음 겨울로 되돌아가 짧게 입학방학을 한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동화 같은 시절의 일이다.

개학식 다음에 눈이 내리기도 하고, 꽃을 본 다음 얼음이 다시 얼 때가 있어도, 그래도 한 해 가운데 이때가 제일 새로운 느낌이 든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온 것은 이미 두 달 전의 일이지만 그때는 방학 중의 일이라 한 해가 오고가는 게 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크게 새로울 게 없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가장 새로운 때는 한 해가 오고갈 때도, 또 음력으로 설날이 다가왔을 때도 아니다. 바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마음이 든다.

대관령 아래 산골마을에서 자란 나에게 그것은 어른들 한 해 농사일의 시작과 때를 같이한다. 어른도 한 해 농사를 시작하고, 학교를 다니는 우리들도 한 해 공부를 시작한다. 어른들의 일부터 이야기하면 겨우내 외양간에 쌓인 거름을 논밭으로 옮겨야 한다. 외양간 바닥에 매일 깔아주었던 짚과 쇠똥거름이다. 그게 지난해 산에서 베어온 퇴비와 섞여 산과 같은 두엄더미를 이룬다.

어른들은 그것을 논밭으로 져내는 것으로 한 해 농사일을 시작한다. 지금이야 경운기나 트럭으로 짐을 실어내지만, 그때는 순전히 지게로 그 일을 했다. 농사를 시작한다는 것은 등에 다시 지게를 붙인다는 뜻이다. 한 해 농사의 첫 준비가 바로 논밭으로 거름을 내는 일인데, 거름을 내며 어른들은 그해 논밭에 무얼 심을지 계획을 세운다.

바로 그 시기에 우리들은 3월 새 학기를 맞이한다. 초등학생이 까만 교복에 까만 모자를 쓰는 중학생이 되는 것도 이때이고,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는 것도,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는 것도 이때이다. 아버지의 한 해 농사가 논밭에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한 해 농사는 학교와 책상에서 이루어진다. 평소엔 어제가 오늘 같은 평범한 날들을 그냥 하루하루 보내다가도 막상 개학이 되고 새 학기가 되면 왠지 꼭 새로운 출발점에 선 것처럼 우리의 마음 자세도 달라지곤 했다.

학교를 다닌 지 아주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3월이 되면 예전 그 시절의 생각들이 저절로 난다. 동네 우물물이 가장 맑은 때는 동이 트기 전인 그날 새벽이다. 그래서 옛날 어머니들은 남보다 일찍 새벽에 일어나 우물에 나가 그 물을 떠와 정화수로 장독대 위에 올려놓았다. 멀리 군에 간 아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3월 새 학기를 맞이한 아들딸의 학업도 축원한다.

나는 일 년 열두 달 중 3월이야말로 바로 그런 정화수와 같은 달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해의 농사를, 한 해의 공부를 정화수를 긷듯 정성스럽게 생각하는 달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이 새롭지만, 그중에서도 3월은 더욱 새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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