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와 차한잔] “수백년前 고전 읽으며… 수십년後 투자 길 모색”

입력 2017-03-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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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대표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대표의 사무실은 크지 않았지만 ‘소(小)우주’ 같았다. 창문을 제외한 3개 벽면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테의 신곡부터 니체, 그리스어문법, 성서와 역사, 사기열전까지 동·서양의 시간이 빼곡했다. 컴퓨터가 있는 책상 바로 앞에는 서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스탠딩 데스크’와 최대 시속이 6km인 워킹머신이 나란히 위치했다. 골프를 즐기지 않는 대신 천천히 걸으면서 무언가를 읽는 것이 그의 취미다.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한편에는 커다란 택배 박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일반인은 거의 사서 볼 리 없는 ‘고어대사전’ 스물한 권이 들어 있었다. 16~17세기 고어를 집대성한 책이다. 수조 원대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의 대표가 왜 사라진 옛말을 들춰보는 걸까.

이상진 대표는 10년 째 주말마다 한학 회원들과 고전 강독 세미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2년간은 두보 시와 17세기 언해를 공부하는 중이다. 신영자산운용이 국내 증권·운용업계에서 몇 안 되는 가치투자·장기투자 전문 회사인 점을 고려하면 그만의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오래돼도 변치 않는 ‘진리’를 계속 갈고 닦는 셈이다.

이 대표는 “단순히 주식을 사고팔고 하는 것이 운용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수십 년간 기업을 성장시킬 훌륭한 경영자와 비전 있는 회사를 고객과 매칭해주는 게 신영의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펀드 상품은 많지만, 실제로 신영자산운용만큼 장기적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관리하는 곳은 많지 않다. 단기 매매 위주의 국내 증시에서 가치ㆍ장기투자를 방해하는 유혹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증시가 박스권 상단으로 치솟으면 투자자들이 환매 물량을 쏟아내기 일쑤다.

그러나 이 대표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강세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운용역은 물론 펀드 수익률도 좌절하게 되는 경험을 지난 20년간 수없이 했다는 것. 오히려 그는 “운용역은 환매보다 돈이 들어올 때 더 조심해야 한다”면서 “대부분의 펀드는 큰돈이 들어올 때 망가진다”고 말했다. 그의 서가 한구석에 어느 성현이 적어놓았을 법한 말이다.

주식을 짧게 보지 않는 것처럼 이 대표는 운용역도 최소 5년을 투자해 길러낸다. 지금까지 경력직을 뽑아서 성공했다고 할 만한 적이 없었다고도 털어놨다. 결국, 지난 8년 내내 매년 신입사원을 2~3명이라도 뽑아서 성숙한 운용역으로 길러내기 위한 투자를 하고 있다. 덕분에 펀드매니저의 평균 근속연수가 7년 7개월로 업계에서 가장 길다.

이달 17일에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운용역과 투자자가 직접 만나는 ‘투자자 포럼’을 연다. 지금까지 약 750여 명이 참여 신청을 했다. 올해는 외부인사 강연을 없애고 온전히 펀드매니저와 투자자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꾸렸다. 신영이 오래 갈고 닦아온 철학이 투자자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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