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경색·고유가가 복병
JP모간 체이스 "유가 배럴당 100달러 돌파후 하락 전망"
석유 소비 전망 잇따라 하향…OPEC·IEA도 전망치 낮춰
정유주, 공급부족으로 실적호조…화학주는 공급과잉 '악재'
국제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 시대를 앞두고 시소게임이 한창이다.
유가 오름세와 환율 내림세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미국의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도 나오면서 내년 경영계획을 짜기 시작한 기업들도 비상이다.
1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지난 7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가 1983년 개장 이후 사상 최고치인 98.62달러까지 치솟은 바 있다.
최근의 국제 유가 강세는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요인과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세계 석유 수요가 확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석유뿐 아니다. 철광석.동 등 주요 원자재 가격 역시 최근 한 달 새 10% 가까이 치솟았다. '원자재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의 수요가 늘면서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유가의 4분기 평균은 88달러 선으로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3번째로 큰 투자은행인 JP모간 체이스가 지난 9일 발표한 유가보고서에서 "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르는 것은 확실하다"고 지적했지만 "후속 가격등락이 클 것"이라며 "(유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유가 앞으로 5년간 배럴당 70~75달러線 유지"
유가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5년간 배럴당 70~75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영국의 자산운영회사 얼라이언스 번스타인(AB)이 전망했다.
AB의 닐 맥마혼과 벤 델 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예측하고 "원유서비스 시장의 개선으로 원유 가격이 단기간에 걸쳐 하락할 수는 있으나 원유생산 원가가 앞으로 감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보았다.
현재 원유생산과 운송 등에 필요한 한계비용이 배럴당 60달러로 국제시장에서 통상 가격이 한계 비용의 1.1~1.2배에서 형성되는 것을 계산하면 배럴당 70~75달러가 된다는 설명이다.
▶내년 석유 소비전망 하향조정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한 고유가가 미국 등의 석유소비를 줄일 것이란 예상에 올해와 내년의 석유 소비 전망이 잇따라 하향조정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올해와 내년에 걸쳐 확실히 수요가 감수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2008년 글로벌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는 13일 월간 보고서를 통해 2008년 석유 수요가 일일 8769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종전 예상치보다 30만 배럴 감소된 수준이다. 이로써 IEA는 올들어 4분기 연속 '수요 감소'에 무게를 실었다. 또 올해 4분기 석유 소비량도 하루 8714만배럴로 전보다 50만배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IEA는 "사상 최고 수준의 국제유가와 장기화되고 있는 주택 시장 침체가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미국의 석유 수요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세계 석유 공급의 40%를 차지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석유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석유소비 전망치를 당초보다 하루 3만배럴 감소한 8701만배럴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 원유 수요의 40%를 공급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각료들은 15일 “원유 시장에 충분한 양이 공급되고 있다”며 증산 필요성을 부인하면서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하는 고유가의 원인을 국제 투기자본과 산유국의 지정학적 불안 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OPEC의 압달라 엘-바드리 사무총장은 “세계 시장에 충분한 원유가 있다며 OPEC이 산유량을 늘릴 필요가 없다”면서 "현 시점에선 우리가 시장에 원유를 더 공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출·내수 쌍끌이
고유가·환율 절상·원자재값 상승 등 3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경기 회복세를 꿈꾸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가 목표로 한 4.6%보다 높은 5%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당초 4.4%에서 4.9%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KDI는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수출증가세가 예상치를 뛰어넘고 내수 회복세도 뚜렷해져 경상수지가 5억달러 적자에서 39억달러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내년에는 내수가 더 힘을 낼 것으로 봤다. 경기 회복에 따른 고용여건 개선, 실질구매력 증가 등으로 올해 4.4% 수준에 이어 내년에도 4%대 중반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경제 5%대 성장 전망
내년도 한국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일단 체면치레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경제·유가 등 대외변수에 따라 상승 모멘텀이 꺾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까지 발표된 민간경제연구소의 ‘2008년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경제연구소가 5.0%를, 현대경제연구원이 5.1%를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치는 올 4.5%(잠정치)보다 높은 수준이며, 잠재성장률인 4%대 후반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문제 등으로 미국 경제가 1% 이하 성장의 급락세를 보일 경우, 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연평균 80달러를 상회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915원 밑으로 떨어질 경우 등에는 이 같은 성장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 최악 시나리오는 유가 100달러·환율 800원대
'유가 100달러, 원-달러 환율 800원대'. 내년 경영계획을 짜고 있는 삼성그룹이 가정하고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애초 삼성의 내년도 전망치는 원-달러 환율은 평균 925원,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는 배럴당 66.95달러였다. 그러나 6일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가는 사상 최고치인 86.53달러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기름값과 환율 흐름이 급격히 변하고 있어 각종 지표 전망치를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룹 측은 각 계열사에 제시한 내년도 유가.환율 전망치를 훨씬 보수적으로 수정·보완해 제시할 방침이다.
지난해 삼성이 예상했던 올해 원-달러 환율은 900~960원, 국제 유가(두바이유)는 배럴당 60~70달러였다.
LG그룹은 내년 경영 여건이 올해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LG가 상정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환율 800원대 후반, 국제 유가 70달러 선'이다. 이와 관련, LG경제연구원은 내년 원-달러 환율이 올해 평균(931원)보다 하락한 915원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기름값(WTI 기준)은 올해 평균(69달러)보다 오른 73달러 선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GS그룹 역시 내년 원-달러 환율이 올 초 제시한 전망치(930원대)보다 20원가량 더 하락한 910원대까지 밀릴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투자증권 송재학 기업분석팀장은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은 경제 호조에 따른 수요 증가로도 해석돼 반드시 악재로만 볼 수는 없지만 환율 하락은 수출 의존도가 큰 국내 기업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유주 뜨고 화학주 지고
유화주의 내년 실적 전망이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정유주는 초고유가에도 불구하고 공급부족으로 실적 호조가 예상되는 반면 화학주는 공급과잉으로 실적이 급속하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유업은 실적 호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중국 등 개도국의 성장 중심 경제 정책으로 세계 석유소비가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엔지니어링 비용 상승, 설비 납기 지연 등으로 세계 정유설비 신증설이 지연되고 있어 석유제품 공급 부족 우려가 해소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 화석에너지의 고갈과 가격 상승으로 바이오에탄올ㆍ바이오디젤 등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석유제품 수요 대체 및 가격 안정 등 대체재로 기능을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화학업종은 공급 확대에 따른 실적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중동ㆍ아시아 지역 설비 증설로 화학업체의 수익성이 올 상반기를 정점으로 하락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사우디프로젝트 완공은 일반 범용제품뿐만 아니라 특수제품 가격 하락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제유가 상승으로 원재료 가격 부담이 높아지고 있는 데 비해 화학제품에 대한 가격 전가는 중동ㆍ아시아 등 신증설 영향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순수 화학업체보다는 화학 외 사업부의 성장으로 이익안정성을 갖춘 종목에 대한 투자가 바람직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