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5%대 성장률젊은 인구…아세안, 한국 경제의 새 파트너”

입력 2017-03-10 13:28 수정 2017-03-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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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 변화 ‘기회의 땅’…아세안 창설 50주년 동반자 관계 구축할 때

중국의 사드 보복을 계기로 대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그 대안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인구 약 6억3000만 명, 경제 규모 2조6000억 달러(약 2986조 원)에 이르는 거대 시장이 과연 ‘포스트 차이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인가.

올해로 창설 50주년을 맞는 아세안과 한국 사이에서 신뢰와 행복의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제기구 ‘한-아세안센터’의 김영선(金英善•62) 사무총장을 만나 한국과 아세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봤다. 아세안 시장의 잠재성을 역설하고, “선진 외교로 아세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전환할 때”라고 강조하는 김 총장에게서 ‘아세안 전도사’로서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세안을 모두 품겠다는 각오로 회원국 깃발들을 끌어안으며 호탕하게 웃는 김영선 사무총장. “‘그 사람을 모르고서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동남아 속담처럼 국제 관계에서도 쌍방향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이동근 기자 foto@ )
▲아세안을 모두 품겠다는 각오로 회원국 깃발들을 끌어안으며 호탕하게 웃는 김영선 사무총장. “‘그 사람을 모르고서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동남아 속담처럼 국제 관계에서도 쌍방향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이동근 기자 foto@ )

“동남아 하면 이주 근로자나 결혼이주 여성, 우리보다 못산다는 비하적인 선입견이 있는데, 이건 동남아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초의 어느 날.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의 한-아세안센터 사무실에 본지 길정우 총괄대표와 한-아세안센터 김영선 사무총장이 마주앉았다. 운을 떼자마자 김 총장의 입에선 아세안에 대한 찬사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아세안을 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해요. 상호 존중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해야죠.” 그는 아세안에 대한 우리의 잠재적 인식이 제한적이고 선입견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세안에 대한 김 총장의 지론은 이랬다. “아세안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다들 잘 알죠. 하지만 이런 관심이 일회성이어선 안 됩니다. 학계와 기업이 연계해 앞으로는 더욱 구체적으로, 각론적으로 접근해야지요.” 그런 점에서 김 총장은 기업들이 동남아 진출에서 실패한 경험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그것이 현지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에 더 도움이 되는데 말이다.

외교의 큰 틀에서 아세안 전략이 논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 총장은 “일본의 경우 ‘후쿠다 독트린’이라고 대(對)아세안 전략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후쿠다 독트린이란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1976~1978)가 내놓은 친(親)아세안 전략으로 그의 아들인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2007~2008) 시절에도 대물림된 정책이다. 후쿠다 다케오 총리는 1977년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후 돌아오는 길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동남아 전략을 밝혔다. 일본이 동남아 국가와 정치·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 등에서도 폭넓게 협력해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다는 게 골자다. 김 총장은 “한-아세안센터가 추구하는 바도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아세안 50년사를 집대성한 국제회의도 계획하고 있다. 올해는 ‘한-아세안 문화교류의 해’이자 ‘아세안 방문의 해’이기도 하다.

김 총장은 일본과 중국에도 아세안센터가 있지만 활동은 한-아세안센터가 가장 독보적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1981년 아세안센터가 설립됐고, 우리나라는 한-아세안 관계 수립 20주년인 2009년에 일본을 벤치마크해 한-아세안센터가 출범했다. 중국도 그 3년 뒤 아세안센터를 열었지만 3국 중 국제기구로서의 역할은 한국이 가장 독보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아세안을 위한 국제기구가 설립되고, 경제적 규모 면에서도 아세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데, 심리적으로 아세안을 소홀히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김 총장은 아세안에 대한 우리의 잠재적 인식이 제한적이고 선입견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총장은 1977년 외교부에 입부해 외교통상부 대변인과 주 레바논 및 주 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까지 역임한 외교통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아세안센터에 들어와 일을 하다 보니 여행·출장 외에 아세안을 너무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아세안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37개가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중에서 가 본 건 겨우 3곳이다. 이런 상황에 아세안을 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진지함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런 김 총장에게 길 대표는 되물었다. “임기 중에 나머지 34곳도 다 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김 총장은 대뜸 동남아 속담을 소개한다. “‘그 사람을 모르고서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동남아 속담이 있어요. 그 사람을 알아야 사랑도 할 수 있다는 거지요. 국제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우호 협력 관계도 상대를 모르고선 안 됩니다. 지금 한-아세안 관계도 짝사랑이예요. 동남아는 한류에 열광하지만 한국은 우리나라 중심적이예요. 쌍방향 교류가 안 되고 있어요.”

이에 대해 길 대표도 거들었다. “중앙일보 출판법인 중앙M&B 대표 재임 시절에 패션지 ‘쎄시(Ceci)’ 중국판을 만들었어요. 그걸 발판으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할 의도였죠. 당시 중국 독자들도 배려해 중국 콘텐츠도 실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어요. 그래야 쌍방향 교류라는 의미가 있다고 본 거죠. 하지만 다들 중국 독자들은 한류 콘텐츠만 원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또한 중국 콘텐츠를 실을 민한 여력도 사실은 부족했습니다.” 인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화제는 자연스럽게 ‘다문화 사회’로 넘어갔다. 김 총장은 “요즘 ‘다문화 사회’ 얘기를 많이 하는데, 다문화 사회란 게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이해를 돕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나라에선 다문화 사회라 하면 외국 커뮤니티를 우리나라로 동화시키는 게 주류예요. 예를 들면 우크라이나 태생 며느리에게 김치를 담그라고 하는 거죠.” 이런 점에서 김 총장과 길 대표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면서 아세안에 대한 전체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외교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기 위해선 정상 차원의 아세안 국가 방문이나 정상 회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아세안이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유망한 시장임도 일깨워줬다. 그는 동남아를 더 이상 노동집약적 산업국가로만 봐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남아는 현재 신기술과 혁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강조하는 김 총장. 그 예로 인도네시아의 스마트 시티 개발과 말레이시아의 스마트 공장을 들었다. 특히 선진시장인 싱가포르의 경우 로봇산업에서 괄목할 만한 수준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제조 라인도 스마트 팩토리로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김 총장은 “자동화는 경제 수준과 관계없이 산업계 대세”라며 “힘을 쓰고 어려운 일은 로봇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한-아세안센터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한-아세안센터는 이런 인식 전환을 위해 현지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투자 정보 제공, 현장 시찰 등의 기회를 주고 있다. 길 대표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도 아세안 세션이 별도로 있다”며 “2015년 포럼에서는 아세안 국가들의 발표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다른 지역의 경제성장률이 부진한 가운데 아세안은 평균 5%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며 특히 35세 이하 젊은 인구가 전체의 63%를 차지한다는 점을 아세안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이런 유망한 시장을 한국이 선점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우위를 빼앗길 수도 있다고 조바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 총장은 “아세안은 신성장엔진이다. 교역 규모로 봤을 때 중국보다는 아세안이 더 클 수 있다. 중국이 세계의 물량 공세를 다 받아낼 수가 없다”며 아세안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더불어 김 총장은 “중국·일본은 과거사로 아세안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한국은 그런 게 없다”면서 우리나라가 경쟁국보다 아세안 시장 접근에 유리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갈수록 심화하는 고령화로 고민하는 한국에 동남아는 좋은 답이 될 수 있다. 김 총장은 “고령화가 더 심해지면 젊은 노동 인력을 동남아에서 수혈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낮은 계층이 대부분이었다면 앞으로는 능력 있고 기술력 있는 인재들로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제 한국도 선진 외교가 필요한 때다. 동남아에 뭔가 퍼주거나 거기에서 돈만 벌려고 하는 건 옛날 식이다. 상호 존중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윈윈’해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관계가 유지된다”고 말하는 김 총장의 목소리에서 한-아세안의 밝은 미래가 그려졌다.

■한-아세안센터는

한마디로 국제기구다.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정부 간 합의에 의해 2009년에 설립됐다. 한국과 아세안 간에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투자교육과 관광, 문화 인적교류 그리고 아세안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영선 사무총장은

-1955년생

-1978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92년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 석사

-1977년 외무부 입부

-2003년 주 레바논 대사

-2009년 외교부 대변인

-2011년 주 인도네시아 대사

-2015년 3월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취임

배수경 기자 sue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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