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주총데이] SK이노-김종훈·아모레퍼시픽-박승호… ‘거물급’ 모시기

입력 2017-03-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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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사외이사 영입 총력

#지난 3일 장이 열리자마자 중견 주류업체 보해양조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 하루 50만~60만 주에 불과했던 거래량은 이날 돌연 7308만 주로 뛰었다. 이날부터 보해양조의 주가는 4거래일간 36.20%나 올랐다. 실적과 관련한 호재는 없었다. 단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영입했다는 공시가 급등의 이유였다.

상장사들의 ‘주총시즌’이 도래하면서 기업들의 사외이사 영입경쟁도 시장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상장사의 사외이사 영입대상은 주로 전직 고위관료, 법조인, 정치인 등 소위 ‘힘 있는 인사’들이다. 특히 올해는 대통령선거, 중국의 사드(THAAD) 보복, 트럼프 보호무역주의 등 불확실성이 큰 만큼 유력 사외이사를 통해 이를 대비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한 것으로 보인다.

◇“파도 대비하자?” 유력인사 모셔오기 총력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올라온 사외이사 선임 관련 공시 등을 살펴보면, 각 상장사가 거물급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대거 상정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SK이노베이션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종훈 전 국회의원을 24일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외이사로 선출할 계획이다. 사업 비중이 큰 미국 시장에서 통상 마찰을 줄이기 위해 국내 최고 통상 전문가를 영입한 사례다.

중국 사업에 사활이 걸린 기업들은 중국 전문가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통’으로 알려진 박승호 CEIBS(중국·유럽 국제비즈니스 스쿨) 교수를 주총에서 신임 사외이사로 뽑을 계획이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움직임으로 중국 사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 사정에 정통한 박 교수를 사외이사로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힘 있는 전직 관료 출신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기업의 구애를 받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 상장사들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선임·재선임하기로 한 사외이사 후보 126명 가운데 기획재정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판·검사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는 33명으로 전체의 26.2%를 차지했다. 작년의 30.8%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4명 중 1명 꼴이다.

LG전자는 공정거래위원장과 국세청장을 지낸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를, 기아자동차는 국세청장 출신인 김덕중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각각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증시 관계자는 “올해는 어느 때보다 반기업 정서가 높아진 상황에서 대선까지 실시되는 만큼 불확실성을 대비하려는 기업들이 힘 있는 사외이사 모시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제도 도입 취지 변색 지적도 = 원래 사외이사 제도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기업과 무관한 외부 인사가 대주주를 견제하고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경영활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대정부 로비나 외풍 차단 목적으로 권력기관 출신의 인사를 사외이사로 두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어 제도 도입 취지가 변질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이왕겸 서스틴베스트 리서치센터장은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을 위해 만든 제도인데, 견제는 하지 않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활용되거나 명목상으로만 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외이사의 역할을 세분화하거나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개선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사외이사 자리가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활용되다 보니 독립적 위치에서 지배주주를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실제로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 공정거래위윈회 조사를 보면 2015년 4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대기업 집단 상장사 이사회 안건 3997건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16건에 불과했다.

김정기 공정위 기업집단과장은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이 가결되지 않은 이사회 안건 비율도 0.4%에 그치는 등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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