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론이 ‘태극기 집회’를 호의적으로 보지 못하는 이유

입력 2017-03-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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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 정책사회부 기자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등 보수 성향 단체가 서울광장을 점거한 지 얼마 안 됐을 시점의 일이다.

언론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던 점거 당사자들은 사진 촬영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자가 현장을 둘러보며 사진을 촬영하던 도중 한 참가자가 강압적 태도로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했다. 기자는 신분을 밝히며 거절했다.

그러자 “니가 뭔데”, “저 좌빨 XX가…” 등의 고성과 동시에, 보수단체 시민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삽시간에 기자를 밀치고 붙잡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불법적인 요소를 숨기는 게 아니라면 (기자가)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이유가 뭐냐”는 항변(抗卞)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는 사람 없이 사태는 소강됐지만, 그날 처음으로 보수단체의 폭력성을 목격했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되며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곳곳에서 ‘태극기’로 대변되는 보수단체들의 성난 아우성이 일었다. 또 한 번 목격한 폭력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나이가 젊거나, 핸드폰으로 촬영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집단 폭행이 자행됐다. 언론사 취재진으로 확인되면 폭행의 강도는 더욱 심해지기도 했다. 사다리와 망치 등으로 경찰차를 닥치는 대로 부수는 장면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한 집회 참가자가 경찰 버스를 탈취해 일으킨 사고는 아까운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했다.

‘촛불’도 ‘태극기’도 모두 민주 사회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다. ‘태극기’ 단체가 그토록 바라던 ‘보수에 호의적인 언론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언론이 편파적이라거나 그들의 정치적 의사 자체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은 공권력과 언론의 자유, 타인의 정치적 의사보다 당연히 앞선다는 비민주적인 태도,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위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반사회적인 가치관. ‘태극기 집회’가 탄핵 인용을 전후로 보여준 이 같은 폭력성이 바로, 많은 언론이 그들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조명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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