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일대에는 하늘을 찌를 듯 경이로운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지상 층수만 80층인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를 비롯해 60층짜리 ‘더샵센텀스타’와 72층의 ‘해운대 아이파크’ 등이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하는 전국 초고층 건축물 현황에서 높이를 기준으로 할 때 부산에서만 무려 4개 동이 5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중 ‘해운대 아이파크’는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바다 조망에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아이디어와 땀이 녹아든 곳이다. 부산의 명물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롯데월드타워와 부산 롯데타운 등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초고층 빌딩이 준공되면 키높이 경쟁에서 밀려나겠지만, 명품 주거공간 평가에서는 앞으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부산 최고의 설계와 입지 = 2011년 준공된 ‘해운대 아이파크’는 지상 72층 높이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로, 118 ~ 423㎡짜리 아파트 3개 동이다. 규모는 1631가구이지만, 사업비는 1조5000억 원에 달했다. 대형 프로젝트이자 회사의 야심작이었던 만큼, 당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직접 홍보에 나서며 지휘봉을 잡았다. 호텔과 스포츠 콤플렉스 건립으로 남부권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게 회사의 계획이었다.
‘해운대 아이파크’는 여러 면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고급화 전략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대산업개발이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와 다시 한 번 손을 잡아서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다윗의 별이 쪼개진 모양을 하고 있는 베를린유대인박물관, 대영전쟁박물관 등 세계적인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로 명성이 높다. 특히 9·11테러로 무너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재건축 설계 공모에 당선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렸다. 우리나라와는 현대산업개발의 삼성동 본사 사옥인 ‘아이파크 타워’ 설계로 인연을 맺었고, 용산국제업무단지 마스터 플랜, 서울디자인올림픽 문화디자인관 등으로 자신의 건축미학을 드러냈다.
그는 ‘해운대 아이파크’를 통해 한국의 자연과 곡선을 형상화했다. 세계적인 설계업체 KPF(쿤 페더슨 폭스 어소시에이츠)가 한국의 도자기와 붓의 형상을 모티브로 롯데월드타워를 그려냈다면, 리베스킨트는 해운대의 파도와 부산의 상징인 동백꽃을 상공에 탄생시켰다. 파도의 역동적인 힘과 동백 꽃잎의 우아함, 처마의 아름다운 곡선이 전체 디자인에 녹아들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바다를 상징화한 곡선 형태의 디자인 자체도 미학적이지만 전망을 극대화하기 위한 디자인의 일부”라며 “층과 조망에 상관없이 예술작품 안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 외에도 ‘해운대 아이파크’에는 세계적인 설계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홍콩 IFC 국제금융센터빌딩 설계를 맡은 에이럽이 구조설계를 맡았고, 요코하마 랜드마크 빌딩 등의 설계에 참여했던 시스카 헤네시 그룹 등이 기전설계에 손을 더했다. 뉴욕 포시즌 호텔과 하얏트, 아만리조트 등 특급호텔 인테리어로 유명한 피터 레미디오스도 펜트하우스를 6성급 호텔로 만드는 데에 힘을 보탰다.
‘해운대 아이파크’는 또 복합용도 개발단지에 올라선 주상복합으로, 단지 내에서 주거, 업무, 쇼핑, 휴양, 레저 등 원스톱 생활이 가능했다.
◇강남 콧대 누른 고분양가 = 입지와 설계 등 개발 초기부터 ‘최고’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이곳은 분양가도 높이만큼이나 하늘을 찔렀다. 평균 분양가는 두 차례 낮춘 덕에 3.3㎡당 1655만 원 수준이었지만, 펜트하우스 분양가는 4500만 원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역대 최고 분양가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리슈빌(3.3㎡당 최고 3972만 원)보다 높았다. 부산이 강남의 콧대도 꺾은 셈이다. 해운대 아이파크의 슈퍼펜트하우스(423.4㎡, 2가구)의 최고 분양가는 57억6000만 원(3.3㎡당 4500만 원)에 달했다.
비슷한 시기 시장에 나와 분양 전쟁을 치렀던 두산건설의 ‘두산위브 더 제니스’의 펜트하우스(325㎡, 10가구) 분양가도 3.3㎡당 4500만 원인 44억2900만 원에 이르렀다. 두 단지의 고분양가 탓에 부산의 3.3㎡당 분양가는 2007년 1104만 원에서 이듬해 역대 최대 수준인 1418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당시 회사 측은 최고급 아파트를 사들일 만한 자금력을 가진 VVIP를 상대로 지속적인 귀족 마케팅을 펼치며 청약 시장에 불을 지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총 4436명이 몰려 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최고 기록은 96.5대 1에 달했다. 당시 부산이 분양 시장 침체로 미분양 적체가 1만 가구를 넘어섰던 걸 감안하면 전사적인 마케팅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해운대 아이파크는 2008년 분양 당시 워낙 고가로 공급돼 오히려 지금은 당시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다”라며 “하지만 부산에서 당시 아이파크라는 아파트를 최고급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데에는 확실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