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로 치매(인지증)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산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창업한 지 100년이 넘은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에서는 고령의 경영자들이 갑자기 치매에 걸려 기업 경영에 피해를 주는 사례가 늘어나 대책이 시급하다고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가 최신호(13일자)에서 특집으로 다뤘다.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몇 년 전 한 상장사에서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80대 경영자의 행동이 갑자기 이상해지고, 외부인과 대화 중 회사 기밀을 발설하거나 타사 직원을 자사 직원으로 착각해 화를 내기도 했다. 결국 이 경영자는 상태가 더 악화해 병원에 입원, 회사는 갑작스럽게 경영자 공백 상황을 겪어야 했다. 또 다른 회사에서는 창업자이자 대표가 기억력이 급격히 감퇴하고 건망증이 심해져 도저히 자리를 지킬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에 장남이 설득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 다른 회사는 경영자가 최고 이사회를 갑자기 취소하는 등 중요한 약속을 자주 잊었다. 게다가 고령으로 출장도 어려워져 주위에서 퇴임 압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오래도록 버티다가 퇴임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약 460만 명이던 일본의 치매 노인은 2025년에는 700만 명으로 5% 증가할 전망이다. 65세 이상의 고령자 5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린다는 의미다.
도쿄소코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전국 사장의 23%가 70세 이상이며, 60대를 포함하면 고령의 사장은 60%에 이른다. 후계자 물색이 어려워 사장 평균 연령은 계속 늘어난다. 2015년은 60.8세로 5년 전보다 1년 연장됐다.
경영자 본인이 치매에 걸리면 의사 결정 및 계약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사업 승계와 상속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 도쿄여자의과대학 이와타 마코토 명예교수는 “이것이 신용 문제가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래처와 다툼이 돼 인연이 끊어진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타 교수는 “중간급 사원이 치매에 걸리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고위급 사람이 걸릴 경우 회사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최고경영자의 판단력이 흐려진 틈을 타 음모를 꾀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즉, 치매를 앓는 경영진은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기업이 경영진의 치매로 인한 비극을 미리 막으려면 주위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닛케이비즈니스는 조언했다. 경영자가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전문가에게 객관적인 진단을 받게 하고, 본인에게 병을 자각하게 하라는 것이다. 고령자일수록 본인의 이상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주위에서 이런 상태를 아예 나몰라라 하면 결국엔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다.
또한 경영자가 치매에 걸리면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사업을 성공시킨 경영자라면 이해 타산에 밝다. 이 때문에 인지 능력 저하에 따른 리스크를 당사자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납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경우에는 경영자와 오랫동안 속내를 털어놓고 지낸 사람으로,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선배에 해당하는 사람이 설명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다. 치매에 걸리면 질투심도 강해지는데다 고령일수록 자신을 인정해주고, 자신이 인정한 상대의 말 밖에 듣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치매 경영자에 의한 문제를 방지하려면 경영진이 애초에 ‘통풍이 잘 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상하 관계에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