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위로를 찾아서

입력 2017-03-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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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피는 꽃들은 대개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알몸으로 피는 것이다.

그래서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반갑다. 참으로 길고 암담했던 겨울의 끝에서 만난 꽃들이기 때문에 더욱 새롭고 반갑다.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 사이,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의 함성과 탄식과 분노도 그 원인이 제거됨으로써 한결 차분해졌다. 얼마쯤의 평화와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봄을 맘껏 즐기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계절만 봄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도 성큼 봄이 들어와 앉은 것이 사실이다.

이 봄이 더욱 우리를 가볍게 하는 것은 3년이나 캄캄한 바다 밑을 떠돌던 세월호가 드디어 물 밖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해방 후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을 50대 이상은 6·25 전쟁을 꼽았고, 50대 이하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을 들었다고 한다. 전쟁이야 세계사적인 비극이지만 해방 후 일어난 대형 사건 중에서 세월호 사건을 꼽은 것은 그것이 국민들에게 던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한다. 300명이 넘는 생명들이 전 국민이 눈을 뜨고 바라보는 가운데 수장되어 갔다는 충격적인 사실 말고도 국가가 국민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 겨울, 팽목항에 갔다. 만장처럼 나부끼는 노란 리본과 바닷바람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바다가 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들을 수장한 배가 그 바다 밑에 있고, 아직 나오지 못한 주검이 그 속에 있고, 사고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았고, 유족의 고통은 진행 중이었는데 작은 항구 혼자 그렇게 바다를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제 물속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세월호도 불태우든지 해체하든지 모두 정리되고 나면 언젠가 위로를 찾아서 다시 팽목항에 가고 싶다.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느냐며

이런 나라 사람 아닌 것처럼 겨울 팽목항에 갔더니

울음은 목이 쉬어 모래처럼 가라앉고

울기 좋은 자리만 남아서

바다는 시퍼렇고 시퍼렇게 언 바다에서

갈매기들이 애들처럼 울고 있었네

울다 지친 슬픔은 이제 돌아가자고

집에 가 밥 먹자고 제 이름을 부르다가

죽음도 죽음에 대하여 영문을 모르는데

바다가 뭘 알겠느냐며 치맛자락에 코를 풀고

다시는 오지 말자고 어디 울 데가 없어

이 추운 팽목까지 왔겠냐며

찢어진 만장들은 실밥만 남아 서로 몸을 묶고는

파도에 뼈를 씻네

그래도 남은 슬픔은 나라도 의자도 없이

종일 서서 바다만 바라보네

- 슬픔을 찾아서-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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