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 키워드] ④재벌개혁…‘경제정의 실현’이냐 ‘과도한 기업때리기’냐

입력 2017-03-30 10:46 수정 2017-04-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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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장미대선’에서 유력 주자들의 경제공약 키워드는 일자리와 함께 단연 ‘재벌개혁’으로 요약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이라는 고리로 이어진 최순실 사태로 파면되면서 대선주자들은 ‘재벌개혁’에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대기업 규제정책은 2012년 대선 때의 ‘경제민주화’보다도 한층 수위가 높아졌다. 중산층과 서민 표심을 겨냥한 것이다.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법, 제도 정비를 통해 바꿔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다만 일부 공약이 표심을 노린 인기영합주의에 과도한 ‘재벌 때리기’로 흐르고, 경제성장 정책과 노동개혁이 관심 밖으로 밀리는 데 대한 경계심이 높다.

우선 상법개정안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등이 모두 공약으로 명시할 만큼 국회에서뿐만 아니라 대선판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 제한 △총수일가 전횡을 막기 위한 집중투표제·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근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상법개정안에 대해 재계는 “경영권을 위협하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기업 지배구조의 대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업 간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탄력을 받고 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재판에 넘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공정위가 대기업 고발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더해 삼성 순환출자 특혜 의혹 등에 연루되면서 대부분의 주자들이 공약으로 내놓았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키고 금산분리를 강화해 재벌과 금융을 분리시키는 한편, 재벌 총수일가와 경영진의 위법 행위에 대해선 사면 금지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는 데 모든 후보가 동의하고 있다.

다만, 각론에서는 대선 주자별로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문 전 대표는 “재벌 개혁 없이는 경제민주화도, 경제성장도 없다”면서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기업의 지배구조부터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안 지사도 지주사에 대한 규제를 재정비하고 순환출자를 금지해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혁하겠다는 주장이지만, 특정 기업이 아닌, 불공정 경제구조를 깨는 일이 중요하다며 문 전 대표를 견제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공정위의 독립성은 높이 돼 전속고발권 폐지는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예 재벌개혁을 넘어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대선 주자들도 있다. ‘재벌 족벌 시스템 해체’를 전면에 내세운 이재명 성남시장은 노동이사제 도입, 재벌의 부당이익 몰수법인 한국형 ‘리코법’ 제정 등 강력한 공약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정의당 대선후보인 심상정 대표도 28일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대선주자 초청 특별강연’에서 “현행법만 제대로 적용해도 재벌 3세 세습은 불가능하다”고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범보수 후보라고 예외는 아니다. 바른정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은 출자총액제한 강화, 기업 오너 횡령·배임 처벌 강화 및 사면·복권 금지 등과 함께 공정시장 환경 조성을 위해 재벌 총수일가가 계열사 일감을 몰아받을 수 있는 개인회사를 설립하지 못하게 하는 혁신 공약을 제시했다. 자유한국당 후보인 이인제 의원도 재벌횡포 차단,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경제계도 공정 사회를 위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는 “경제계는 경영 관행의 선진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잘 알고 있다”면서 “선진국처럼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하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고 기업도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실천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이 조기 대선 정국에서 기업의 투자를 일으키기보다는 지나치게 반기업 정서에 기댄 ‘재벌 잡기’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갇힌 게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지나친 ‘대기업 배싱(때리기)’은 역효과만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상법개정안의 경우 단기이익만을 쫓아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는 투기적 헤지펀드들에게 국내기업 경영권 개입의 물꼬만 터줄 위험이 있다”며 “국내 기업의 장기적 성장동력을 지켜낼 ‘방패’ 마련에는 무관심한 현재의 기업정책 방향이 바람직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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