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졸혼, 문제 부부의 잘못된 문화인가

입력 2017-03-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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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중견 연기자 백일섭(74)이 요리 연구가 심영순(77) 씨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운다. 혼자서 식당을 찾아 밥을 먹고 소주 한잔을 기울인다. 결혼한 아들과 가끔 만나 낚시도 한다. 요즘 시청자와 만나는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 2’와 지난해 11월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백일섭이 보여준 모습이다.

백일섭이 눈길을 끌며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바로 ‘졸혼(卒婚)’을 공론화하며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냈기 때문이다. 졸혼은 2016년 한 해 동안 포털 사이트 네이버 이용자가 가장 많이 찾아본 신조어 중 ‘츤데레’ ‘어남류’ 등에 이어 7위를 차지할 정도로 일반인의 관심을 끌었다. TV와 신문 등 미디어가 최근 집중적으로 다루는 졸혼은 부부 생활의 새로운 문화로 부상하고 있다. 졸혼이 함께 살거나 헤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결혼 이후 생활에 하나의 선택지(選擇肢)로 추가됐다.

‘졸혼’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杉山由美子)가 2004년 출간한 ‘졸혼을 권함(卒婚のススメ)’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다. 졸혼은 ‘결혼을 졸업하는 것’을 뜻한다.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혼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다. 졸혼은 결혼의 의무에서 벗어나지만, 부부 관계는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혼, 별거와 구별된다.

“졸혼은 개인의 선택이다. 부부간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함께 생활하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나처럼 졸혼을 선택할 수도 있다. 졸혼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라는 백일섭의 졸혼 선언은 대중과 전문가들 사이에 졸혼에 대한 유의미한 논란을 촉발했다.

일부 전문가나 상당수 사람은 졸혼은 이혼으로 가는 가족 해체의 전 단계이며 부부간의 문제가 있다면 해결한 후에 건강한 부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따로 산다고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는 논지로 졸혼에 반대한다. 반면 이혼과 달리 졸혼은 자녀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이 없이 부부가 각자 독립적으로 살며 결혼생활로 인해 못 했던 것을 하면서 사는 행복한 삶이고 가족 해체가 아닌 부부의 자존감을 높이는 결혼 문화라고 주장하며 졸혼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전문가와 일반인도 적지 않다.

물론 TV와 신문 등 미디어는 여전히 백일섭에게 “부부가 따로 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부부는 함께 살아야 한다”라고 질타한 요리 연구가 심영순 씨 같은 전통적 정서를 강조한다. 뉴스,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의 지배적인 이미지와 서사를 통해 “부부는 한집에 살아야 한다”는 담론을 철칙처럼 재현하고 있다. 반면 졸혼은 비정상 혹은 문제 많은 부부의 생활로 적시(摘示)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졸혼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주조(主潮)인 미디어와 달리 대중은 졸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가연이 지난해 회원 548명(남 320명, 여 2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7%가 졸혼 문화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밝혔듯 가족은 능동적으로 변화한다. 가족 형태, 가족 구성원의 역할, 부부 생활 스타일 등은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변모한다. 졸혼은 구조조정 등으로 짧아지는 은퇴 나이와 100세 수명 시대가 초래한 부부 생활의 한 형태다.

백일섭이 만족해하는 졸혼 생활을 보면서 “여자가 혼자 살면 깨가 서 말이고, 남자가 혼자 살면 이가 서 말이다”라는 속담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미디어의 부정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졸혼은 부부의 긍정적 선택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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