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Eye] EU 떠나는 영국, 와타나베 부인들 깨웠다

입력 2017-03-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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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and goodbye(고마웠어요. 잘가요.)”

영국 일간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30일자(현지시간) 헤드라인이다. 평소와 다른 파격적인 편집이다. 별거하던 아내에게서 실제 이혼서류를 받은 남편마냥 허탈해하는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표정이 압권이다.

투스크 의장은 전날 팀 배로우 EU 주재 영국대사로부터 영국 정부의 EU 탈퇴 통보 서한을 받고 나서 기자들에게 “애써 행복한 날인 척 할 이유가 없다. 우리(EU)는 벌써 당신(영국인)들이 그립다.”면서 “고마웠어요. 잘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각,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순간이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모두가 함께 할 때”라고 호소했다. EU는 31일까지 협상 가이드라인 초안을 마련한 뒤 내달 27일 장관급 회담을 거쳐 4월 29일 EU 정상회의에서 가이드라인을 확정, 이에 따라 EU와 영국 간 협상은 5월 이후께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작년 6월 영국의 국민투표 이후부터 브렉시트는 예정됐던터라 영국이 EU에 이혼서류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어도 시장 반응은 시큰둥했다. 미국 주식시장은 특별한 재료가 없어 방향성을 잃었고, 영국 파운드는 달러에 대해 소폭만 하락했을 뿐이다.

하지만 영국과 EU의 이혼 절차가 본격화하면서 외환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환증거금(FX) 거래 큰 손인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들의 존재감이 다시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국제결제은행(BIS)의 ‘세계외환시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나라별 외환거래 규모 추이에서 아시아 시장은 급속도의 성장세를 보인 반면, 영국 시장은 한계점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선 영국은 1995년 FX 거래 규모가 하루 평균 2660억 달러(약 297조원)에서 2007년에는 1조4830억 달러, 2013년에는 2조7260억 달러로 급증했다. 그러나 2016년에는 2조4060억 달러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이는 전세계 거래 규모 6조5140억 달러에서는 최대 규모다. 미국 뉴욕시장도 1995년은 2660억 달러에서 2013년은 1조2630억 달러로 급성장했지만 영국 런던시장에는 미치지 못했다. 2016년에는 1조272억 달러로 제자리 걸음이었다.

반면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 아시아 시장은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싱가포르 시장은 1995년 1070억 달러에서 2013년은 3830억 달러로, 2016년은 5170억 달러로 꾸준히 증가했다. 라이벌인 홍콩 시장도 1995년 910억 달러에서 2013년은 2750억 달러로, 2016년은 4370억 달러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다. 일본 시장도 1995년 1680억 달러에서 2013년은 3740억 달러, 2016년은 3990억 달러로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이같은 현상의 배경에 대해 FX 전문가인 도시마 이쓰오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 세무당국에 의해 고객 정보 공개를 강요당하는 스위스 시장 등에서 세계 부유층의 자금이 싱가포르 시장으로 대이동하고 있다. 홍콩 시장에서는 위안화 거래 활성화의 영향이 선명하다. 도쿄 시장에서는 와타나베 부인으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의 FX 거래 참여가 두드러진다. 도시마 씨는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EU 탈퇴는 런던 시장의 침체를 야기해 외환거래 일부가 아시아 시장으로 흐르는 경향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파운드/엔 환율 1년간 추이. FT
▲파운드/엔 환율 1년간 추이. FT

작년 브렉시트가 결정된 직후, 그 여진으로 엔화 가치가 널을 뛰면서 와타나베 부인들은 FX 거래에서 한발짝 물러나는 양상을 보였다. 작년 7월초 엔화의 달러나 유로 등 주요 통화에 대한 거래 건수는 2012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브렉시트에 따른 혼란으로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급등해 손절매와 평가 손실을 떠안은 개인들이 FX거래에서 손을 뗀 영향이다. 일반적으로 와타나베 부인들은 엔을 팔고 외화를 매입하는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외화 매입은 금리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엔화 가치가 오르면 환차손을 안기 쉽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후 엔화 가치는 다양한 통화에 대해 상승했다. 이후 10월에는 영국 파운드가 아시아 시간대에 약 6%가 순식간에 폭락하는 ‘플래시 크래시’ 현상도 일어났다. 와타나베 부인들 사이에서는 파운드-엔이 인기 통화 페어 중 하나다.

BIS 보고서의 통화별 거래량을 보면 1위가 달러(점유율 88%), 2위가 유로(31%) 3위는 엔(22%) 순이었다(외환시장에서는 달러·엔 같이 통화 페어로 거래되기 때문에 점유율 합계는 200%가 된다). 특히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세계 외환시장에 인식되고 있어 시장이 리스크 오프로 돌아서면 투자 자금의 전통적인 도피처가 된다. 이런 시장 환경 아래에서 영국의 EU 탈퇴는 세계 외환시장에서 도쿄시장의 존재감을 높여, 와타나베 부인들의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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