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88. 아로(阿老)

입력 2017-04-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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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조묘 주관한 첫 여성 제사장

아로는 신라의 건국 시조인 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의 딸이다. 신라의 건국 신화에는 혁거세의 왕비가 알영(閼英)으로 나타나는데 혈연적으로 아로의 친어머니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2대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과는 남매간이다. 한편 남해차차웅의 왕비는 아루부인(阿婁夫人)으로 나타난다. 아로는 이 아루부인과 같은 인물이면서도 남해차차웅과 남매 관계에 있다고 하였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로는 왕의 딸로 태어나 왕의 누이, 혹은 왕비로 살았으니 계보상으로만 보더라도 최상층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로는 단순히 계보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근대 대부분의 여성들은 왕의 어머니나 아내, 혹은 딸로서 계보상의 존재로만 등장한다. 그러나 아로는 혁거세 거서간의 딸로, 혹은 남해차차웅의 누이나 왕비로 사료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아로는 본인이 정치적·사회적으로 독자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아로는 신라 최초의 국가 제사인 시조묘(始祖廟)의 제사장이었다. 삼국사기에는 제2대 남해차차웅이 즉위 3년에 시조를 제사 지내기 위한 시조묘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시조묘는 1년에 네 차례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남해차차웅이 누이동생인 아로로 하여금 제사를 담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로는 남해왕대 건립한 시조묘 제사를 담당했다는 기록 외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로를 통해 신라에서는 시조묘라고 하는 국가 제사에 왕실 여성이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아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왕실 여성이 국가 제사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 초기의 왕비 이름을 보면 시조비 알영을 비롯하여 아루, 아로, 아니, 아이혜 등 알(ar)계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알(ar)계 이름은 단순한 개인 이름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신라 왕실의 제사를 관장했던 종교적 직능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아로 이후에도 신라에서는 알(ar)계 이름으로 나타나는 왕실 여성이 국가 제사에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알(ar)계 왕비의 이름은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 시기는 왕의 칭호를 마립간이라고 칭하고 있으며, 마립간기 말기에 국가 제사의 중심도 신궁 제사로 바뀌고 있다. 즉,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의 변화는 왕의 호칭만이 아니라 국가 제사 체계에도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시조묘 제사에서는 알(ar)계 왕실 여성이 사계절 제사를 주관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국가 제사가 변화되면서 왕실 여성들은 점차 국가 제사에서 배제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관련 문헌사료에서 신라 초기에는 여성 신격이 주로 나타나고 종교적 의미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 보이나, 점차 신격이 남성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일관(日官)과 같은 보다 분화된 직책을 가진 남성이 등장하는 변화상을 통해서도 이 같은 점을 읽을 수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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