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리얼리티 쇼와 교황의 비판

입력 2017-04-0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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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스타 이준기가 배우 박민영과 달콤한 전화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안방에 전달됐다. tvN ‘내 귀에 캔디 2’다. 방송 직후 연예 매체들이 이준기가 연기자 전혜빈과 교제한다고 보도했다. tvN이 4일 이준기와 박민영의 남은 방송분을 취소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SBS ‘미운 우리 새끼’, MBC ‘나 혼자 산다’, jtbc ‘한 끼 줍쇼’, tvN ‘신혼 일기’, 채널A ‘아빠 본색’…. TV를 점령한 ‘내 귀에 캔디’ 같은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다.

KBS를 비롯한 수많은 방송사가 리얼리티 쇼를 무분별하게 제작하고 있다. 리얼리티 쇼의 홍수와 시청자 열광 속에 유의미한 비판이 최근 제기됐다. “TV는 계획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캐릭터들의 순간이 카메라 앞을 스쳐 지나는, 즉 진짜가 아닌 ‘리얼리티 쇼’로 넘쳐난다. ‘리얼리티’라는 가짜 이미지에 빠지지 마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를 위한 영상 메시지를 통해 가한 리얼리티 쇼 비판이다.

리얼리티 쇼는 다큐멘터리와 오락성 강한 드라마, 쇼, 예능 등을 혼합한 것으로 현장 화면, 재연, 사회자 이야기 등이 다양하게 가공돼 구성된다. 2000년대 초반 미국 폭스TV의‘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가’ 등이 인기를 끌고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포맷으로 주목받으면서 우리 방송사도 앞다퉈 리얼리티 쇼를 내보내고 있다.

수많은 시청자는 왜 리얼리티 쇼에 열광할까. 변형과 합성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현실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잃어버리고 모사(模寫)의 세계에서 헤매지만, 그 반작용으로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갖게 된다. 그 욕구를 잘 포착한 것이 리얼리티 쇼다. 생생한 현실 그대로의 리얼리티에 대한 대중의 강렬한 욕망을 리얼리티 쇼가 잘 충족시켜준다.

미국 칼럼니스트 스티브 존슨은 ‘바보상자의 역습’에서 “리얼리티 쇼의 전율은 ‘정말로 일어나고 있구나’라는 데서 생긴다.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감정들이 밀려와 얼굴에 드러나는 단 0.5초의 시간일지라도 지금 TV에 나오는 사람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시청자를 리얼리티 쇼에 열광하게 하는 이유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연예인과 일반인의 생활, 사랑, 결혼, 육아, 성형, 섹스 등을 자주 다루는 리얼리티 쇼는 대중의 관음증적 욕구를 만족하게 해 인기를 얻고 있다.

리얼리티 쇼 제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제작진이 눈길을 끌기 위해 가공의 스토리텔링도, 허위의 사생활도, 조작적 감정 만들기도 서슴지 않는다. 출연자의 아픔과 상처, 장애마저 아무렇지 않게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한다. “리얼리티 쇼는 개인의 존엄성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왜냐하면, 출연자를 인격체가 아닌 인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립 범죄행동학교 연구원 올리비에 라작이 ‘텔레비전과 동물원’에서 한 비판이다.

리얼리티 쇼라 할지라도 현실이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리얼리티 쇼는 현실을 재구성한 재현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청자는 리얼리티 쇼의 재현을 사실로 인식하고 현실 인식의 척도로 삼는다. 이 때문에 진정한 인간관계를 망각하고 제대로 된 삶을 설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조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혹은 일기를 쓰거나 저녁에 단 몇 분이라도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와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라며 리얼리티 쇼의 가짜 인생에 빠지지 말고 진정한 삶의 주인공이 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언은 매우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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