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현의 경제 왈가왈부] 고조되는 위기 "북한 리스크보다 트럼프 리스크"

입력 2017-04-11 07:00 수정 2017-04-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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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정학적 리스크, 과거 현재 그리고 금융시장

국내 금융시장에서 북한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우선 국내 상황과 달리 미국에서는 연일 북한 선제타격론을 중심으로 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주목받았던 미·중간 정상회담에서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習近平)으로 상징되는 스트롱맨들 사이에서 한반도 문제에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미·중 정상회담 직후 미국이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한반도 쪽에 전진 배치하는 등 독자행동을 채비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높다는 판단이다.

다만 미·중간 정상회담 중에 미국이 시리아를 폭격했다는 점은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미국 스스로 중동과 동북아 양쪽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기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을 끝내기 위해서는 시리아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당분간 시리아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또 전쟁 중인 시리아와 달리 미·중·러·일 4대 강국이 자리잡고 있는 한반도에서 새롭게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 실제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애슈턴 카터는 지난 2일(현지시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선제 타격할 경우 6·25 이후 가장 파괴적 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중국 측 환추스바오 신문도 10일 ‘북한이 다음 시리아가 될까’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이 실제 북한을 타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 달라진 시장 분위기…북한 리스크 아닌 트럼트 리스크 인식도 =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를 단행할 경우 상황이 돌변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북한에 대한 경고성 제재에 그칠 경우 이번 위기는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받아드리는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관계에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 국제연합(UN)의 추가 제재도 사실상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수단이 전쟁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서다.

실제 이를 반영하듯 북한 선제 타격론과 시리아 공습 소식이 전해진 지난 6일과 7일 사이 원·달러 환율은 10.1원이나 올랐다(원화가치 하락). 코스피도 9.12포인트 하락했다. 채권시장에서도 안전자산 선호심리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충돌하면서 등락을 반복한 끝에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가 국고채 10년물 기준 5.2bp(1bp=0.01%포인트) 상승했다.

미·중 정상회담이 끝나고 처음 열린 10일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외환·주식·채권의 트리플 약세가 지속됐다. 복수의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과거 지정학적 리스크와 달리 지금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달까지만 해도 국내 주식과 채권을 매수하던 외국인들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있다. 이달 들어 7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482억94000만 원에 이르고 있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졌던 지난 6일과 7일 양일간 외국인은 주식시장에서 907억8400만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장외채권시장에서도 만기가 비교적 긴 국고채를 990억 원어치 순매도한 반면, 만기가 짧은 통화안정증권(통안채)을 1460억 원어치나 순매수했다. 이는 듀레이션(가중평균만기)을 줄이면서 금리상승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물론 여차하면 한국 시장에서 돈을 빼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투기성 내지 단타성 자금이 몰리는 국채선물 시장에서 외국인 움직임은 더 민첩했다. 6~7일 양일간 3년 선물시장에서는 1만3451계약(1조4706억6500만 원)을, 10년 선물시장에서는 4713계약(5891억4500만 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한편 외국인은 3월 현재 국내 주식을 4개월 연속 순매수한데 이어, 채권도 3개월째 순투자를 지속했었다. 외국인 보유잔고도 주식 528조7680억 원, 채권 98조6900억 원에 달했다. 이를 비중으로 보면 주식은 32.4%로 2014년 8월(32.6%) 이후 2년7개월만에, 채권은 6.1%로 지난해 5월(6.2%) 이후 10개월만에 각각 최대치다.

반면 이번 사태를 북한 리스크가 아닌 트럼프 리스크로 인식해야 한다는 관측도 있어 흥미롭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첫 법률안인 트럼프케어부터 체면을 구긴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대외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대외 상황에 개입을 자제키로 했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시리아를 타격하고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는 것도 내부 문제를 외부로 돌리려는 움직임이라는 지적이다.

이유야 어떻든 한반도 문제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매 한 가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북한 리스크가 아닌 트럼프 리스크인 듯 싶다. 금융시장 움직임도 결국 외국인이 어떻게 인식하느냐”라며 “국내 기관 입장에서는 이를 종속변수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 도발-합의-불이행의 과정…시장은 무뎌졌을까 신뢰를 구축했을까 = 북한 핵문제는 이미 28년이나 된 해묵은 과제다. 그간 도발과 합의 그리고 불이행의 과정이 지속돼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 북핵 사태에 대한 사건과 논의 과정을 훑어보면 우선 1989년 북한 영변에서 대규모 핵시설이 발견되면서 북핵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후 1991년 남북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1992년 북한의 합의 불이행, 1993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1994년 북미간 제네바 기본합의문 작성, 2003년 북한의 NPT 재탈퇴 등이 이뤄졌다. 이후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북핵 논의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를 1단계로, 1993년부터 2005년까지를 2단계로, 그리고 2006년부터 현재까지를 3단계로 규정하고 있다. 즉, 북핵문제가 1단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무효화부터 2단계 북한 NPT 탈퇴를 거쳐, 3단계 북한 1~5차 핵실험 강행으로 이어지면서 북핵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다만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 실현에 목표를 둔 2005년 9·19 공동성명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인 2007년 2·13 합의가 있는 만큼 파국을 코앞에 둔 지금의 상황에서도 대화의 끈을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해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의 상황도 3단계의 연장이라 본다”며 “6자회담에서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는 점에서 6자의 틀이든 다른 논의든 기존 합의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반면 30년 가까이 끌어온 북핵문제에 시장 역시 적응하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적응하는 과정이 무뎌졌든 신뢰를 구축했든 간에 말이다.

실제 1차 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 10월 코스피 지수가 실험 직전 지수를 회복하기까지는 6일이 걸렸다. 이후 3차 핵실험이 있었던 2013년 2월엔 불과 하루 만에 직전일 지수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한 가지 사족을 곁들인다면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구축한 남북관계의 바탕이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크게 줄였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와 수출호조 등 펀더멘털 강화로 북한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떨쳐낼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남북간 교류를 통해 일정부문 신뢰를 구축한 것이 자리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즉, 한반도 전쟁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외국인의 국내 투자도, 국내기업의 경쟁력 강화도 가능했던 것이다.

현재 김정은 망명 권유설, 4월말 선제 공격설 등 소위 지라시라 불리는 증권사 소식지에서는 별의별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한국의 정치권도, 정부도, 금융시장 주체도 없다는 점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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