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처음부터 P플랜 계획했나…초강수 배경은 '정치적 부담 덜기'

입력 2017-04-12 09:38 수정 2017-04-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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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최순실 트라우마'로 결정 못해..금융위ㆍ산은, 차기정권으로 넘기면 '문제부처' 낙인

대우조선해양 문제를 반드시 ‘지금’ 결정해야 하나.

사채권자 집회를 차기 정부가 들어선 7월 이후로 미루자는 국민연금의 요구에 산업은행이 ‘연기는 없다’고 못 박았다. 채무 재조정에 실패해 P플랜(회생형 단기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무조건 이번 정권 내에서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미 법상 공고한 집회를 미루자는 무리수를 두고, 산업은행은 처음부터 P플랜을 염두에 둔 것 같은 ‘초강경’ 태도로 일관 중이다. 양 기관이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득실을 따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논리에 따라 계산을 거듭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책임 미루자” vs “책임 추궁 피하자”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홍역을 치렀던 국민연금은 독립적 의사 결정에 부담이 큰 상황이다. 차기 정부에서 대우조선 사태에 대한 전방위적 문책이 뻔한 상황에서 선뜻 현 정부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도 현재 구속기소된 문형표 전 이사장이 사퇴한 후 공석이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이 투자위원회 위원장으로 출자전환 찬성 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전날(11일) 정용석 산은 부행장과 만난 자리에서 집회 자체를 차기 정권 이후로 연기하자고 주장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읽힌다. 당장 5일 앞으로 다가온 사채권자 집회를 앞두고 기존 ‘4월 회사채(6-1) 우선상환’ 요구를 철회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6-1’ 회사채만 우선상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만 만기를 연장하자는 주장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상환이 아니라 연장을 주장할 계산이었다면 사채권자 집회 일정이 잡히기 전에 했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상법상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하려면 총회 2주 전(무기명채권 등 투자자 미상 시 3주 전)에 서면이나 전자문서로 통지해야 한다.

이에 예정대로 사채권자 집회가 이달 17일과 18일 열려도 국민연금이 ‘반대’ 표가 아닌 ‘기권’을 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국민연금 내부 관계자는 “금융위와 산은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서둘러 대우조선 추가 지원안을 마무리 지으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산은과 금융위는 차기 정부로 ‘대우조선 폭탄’이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다. 새 정권 출범 이후 금융위가 보고할 첫 문서가 빚더미인 ‘대우조선 폭탄’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권 출범 초기부터 대우조선 등 국민적 관심이 큰 문제로 청와대에 부담을 주면 해당 부처가 미리 이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문책을 당할 수 있다”며 “정권 내내 ‘문제부처’로 찍히면 실무에서든, 진급에서든 여러모로 곤란한 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산은·수은은 P플랜 가도 문제없다? = 산은이 강하게 원칙을 고수하면서 P플랜으로 가도 국책은행은 크게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삼정KPMG가 자율적 구조조정과 P플랜 상황에서 각 금융기관의 채권 회수율을 계산한 결과 수출입은행은 오히려 P플랜에서 회수율이 10%포인트 높았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 투자자의 회수율은 50%(자율적 구조조정)에서 10%(P플랜)로 가장 많이 떨어진 반면 산은은 81.1%에서 66.2%로 15%포인트가량 줄어드는 데 그쳤다. 산은과 수은, 시중은행 등은 P플랜 시 선수금환급보증(RG)콜이 발생하고 자회사 보증 채무도 현실화하면서 채권 규모가 대체로 커지지만 이와 동시에 대우조선에 설정해 둔 담보가 회수예상 금액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2016년 대우조선 사업보고서상 산은과 수은이 대우조선에 설정한 담보는 약 5조2016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RG콜이 발생하면 건조 중이던 선박도 담보로 계산된다. 이에 수은의 회수예상금액은 자율적 구조조정 시 1조1246억 원에서 P플랜 시 1조7700억 원으로 6000억 원 이상 증가한다.

특히 수은은 자율적 구조조정으로 가면 영구채 금리를 기존 3%에서 1%로 추가 인하하고 대우조선에 14억 달러 RG도 추가로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에 수은 내부에서는 수은은 산은과 달리 주채권은행도, 주주도 아닌데 너무 고통 분담을 크게 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홍영표 수은 수석부행장은 이날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계산을 하건 P플랜 시 손실이 훨씬 크다”며 “수은은 계속 산은과 함께 자율적 구조조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산은과 수은이 P플랜하에서 손실을 크게 인식하고 있다면 국민연금과 막판 ‘대타협’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 역시 마지막까지 산은에 여러 조정안을 제시하며 고심한 흔적을 남긴 만큼 ‘찬성 명분’을 마련했다고 보고 산은 조정안에 동의할 가능성도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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