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6년] 제왕적 사법부 운영·법관 블랙리스트,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입력 2017-04-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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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서울대·男’ 기수대로 법관 임용…‘ 13 대 0’ 판결 소수·소신의견 실종

양승태(69·사법연수원 2기) 대법원장이 오는 9월 퇴임한다. 임기가 채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명단을 관리했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고,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한과 재판부 독립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특정 학회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정황도 나왔다. 취임 초기 사법부의 신뢰를 강조하며 소통 강화에 힘썼고, 대법원보다 1, 2심 재판이 충실히 이뤄지도록 노력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을 행사하며 사법부 관료화를 심화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13대 0’ 판결로 정책법원 존재감 드러냈지만 ‘소수의견 실종’ 비판도 = 2015년 7월 변호사업계는 대법원에서 내놓은 판결에 크게 술렁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의 만장일치로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판결을 놓고 변호사 업계와 학계는 물론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공서양속에 반하기 때문에 무효’라는 논거도 부실했지만, ‘기존에 체결된 약정은 그대로 두고 앞으로만 무효로 한다’는 결론이 법리상 가능한가에 관해 의문이 제기됐다. 판결 하나로 기존에 체결된 수많은 계약을 무효로 했을 때의 부작용을 고려한 것이었지만, 대법관 전원이 논거가 빈약한 결론에 만장일치 결론을 냈다는 점은 치열한 토론을 벌여야 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과연 제기능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2012년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사실상 무죄 취지로 본 판결이나, 디지털 증거를 압수수색한 경우 검찰이 피의자 입회하에 분석한 자료가 아니면 증거가치가 없다고 결론낸 판결 등 굵직한 사건들도 이 기간에 ‘13대 0’으로 결론이 났다. 2015년 여름을 기점으로 만장일치 판결이 줄을 이으면서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의식해 무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했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독수리 오남매’ 사라진 대법원…대법원장 ‘서열인사’가 소수의견 실종 불러 = 전임자인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는 ‘독수리 5남매’로 불렸던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들이 진보적인 판결을 여러 번 내놓았다. 특히 형사 재판에서 검찰 수사기록을 전면 재검토하는 ‘공판중심주의’가 정착되면서 인신구속의 자유, 형사절차에서 피고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전향적인 결정이 대법원에서 이어졌다.

특히 사법연수원 12기인 박시환 대법관이나 사법 사상 최초로 여성인 김영란 대법관을 지명하는 ‘기수 파괴’ 인사가 단행되면서 대법원 구성 다양화를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 부임 이후 사법연수원 10~14기 엘리트 판사들이 차례대로 대법관에 지명되면서 ‘서열인사’가 부활했다. 여성인 박보영 대법관(56·16기)과 김소영 대법관(52·19기) 발탁이 파격이었지만, 박 대법관의 경우 이상훈(61·10기), 김용덕(60·11기) 대법관 인사와 맞물려 서열인사의 구색 맞추기인 측면이 있었다. 김 대법관도 검찰 추천 인사인 김병화(63·15기) 후보자의 낙마 사태로 선택의 여지가 좁아졌던 상황에서 이뤄진 인사였다. ‘50대, 서울대 출신 남성 엘리트 법관’이 연수원 기수 순서대로 대법관에 임용되면서 대법원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까지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을 완전히 이원화해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승진하면 고등법원 부장이 되는 시스템을 없앤다는 계획도 백지화됐다. 당초 지법-고법 이원화 제도는 ‘승진’ 개념을 아예 없애 대법원장으로부터 재판부의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 임기 중 고등부장 승진 인사가 계속 이어가는 방침을 정하면서 이러한 의도는 무색해졌다. 더욱이 고등부장 발탁 인사도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판사 위주로 이뤄지면서 사법부 관료화는 오히려 심화됐다.

◇명운 걸었던 ‘상고법원’ 도입 실패…재판부 독립성 시비까지 = 양 대법원장은 2015년 상고법원 도입에 사활을 걸었다. 대법관들이 중요 사건만 처리하고, 나머지 3심 사건은 별도의 상고법원에서 처리한다는 이 제도는 막강한 법원행정처의 로비력을 동원해 국회의원 168명의 발의로 국회에 법안이 제출됐다. 1년에 4만여 건의 사건이 대법원에 몰리면서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꾸준히 이어진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심급제 변경과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진 변호사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섣불리 국회 로비에 나선 게 독이 됐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반대 의견을 냈고, 법무부 역시 미온적 내지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국회에서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양 대법원장이 가장 강력하게 추진했던 정책인 상고법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상고심 개편 논의는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상고법원과 동일한 형태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임기 만료 6개월여를 앞두고 일선 재판부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의혹으로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판사들의 ‘사법개혁’ 관련 학술행사를 축소하라고 지시한 의혹으로 법원행정처 핵심 인사인 임종헌(58·16기) 차장이 사의를 표명했고, 이인복(61·11기)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만일 양 대법원장이 재판부 독립성을 저해하는 조치를 지시 혹은 관여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사법파동’이 재현되는 등 후폭풍이 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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