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인수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수 후보가 좁혀지면서 후보군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기술 안보를 이유로 중국 기업의 인수를 대놓고 꺼리는 미국과 일본정부, 그리고 협력사였던 업체마저 태클 걸기에 나서면서 인수전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13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도시바 반도체 사업 매각 입찰 기업 10곳 중 한국의 SK하이닉스, 대만 혼하이정밀공업,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 미국 브로드컴-실버레이크 컨소시엄 등 4곳으로 압축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인수전은 브로드컴과 웨스턴디지털, 미국 기업 2파전으로 좁혀졌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혼하이는 중국 본토 기업은 아니지만 중국과 관계가 깊어 미국과 일본 정부가 매각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의식한 듯 혼하이는 다른 업체보다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다른 경쟁업체들보다 1조 엔 더 많은 3조 엔까지 쓸 의향을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도시바가 채무 초과를 조속히 해결하고 싶어서 혼하이를 선택하더라도 미국과 일본 정부의 입김에 의해 무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의 인수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일본 정부가 미국이나 일본 기업의 인수를 선호하고 있는데다 도시바의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는 한때 기술유출 문제로 법정 공방을 벌인 과거사가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3대 은행과 미국 사모펀드 실버레이크가 브로드컴의 인수 자금 지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즈호파이낸셜그룹과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등 일본 3대 은행이 브로드컴에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인수자금 약 150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3대 은행은 도시바의 주거래 은행이다. 여기에 연합체로 인수전에 뛰어든 사모펀드 실버레이크가 전환사채 형태로 30억 달러 자금을 제공할 예정이다. 사실상 3대 은행과 파트너사로부터 총 180억 달러(약 20조원) 실탄을 지원받게 되는 셈이다.
브로드컴은 장전된 실탄을 바탕으로 다음 달 19일 2차 입찰 마감일에는 인수 가격을 상향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브로드컴은 1차 입찰에서는 2조 엔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혼하이도 예고한대로 최대 3조 엔까지 써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도시바 몸값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도시바 매각에 새로운 복병이 생기면서 도시바 인수전은 더욱 복잡해지게 됐다. WD가 이번 1차 매각 입찰에서 유력 인수 후보들보다 낮은 가격을 써내며 사실상 인수 가능성이 작게 점쳐졌으나 우선협상권을 주장하며 판세 뒤집기에 나섰다. 이에 사실상 도시바 인수전이 브로드컴과 WD와 경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WD는 지난 주말 도시바 이사회에 의견서를 보내 합작사 계약에 따라 자사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제3자 매각하는 것이 협력 관계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반도체 인수 협상에서 우선 독점 협상 권한을 요구했다. WD는 또 다른 기업들이 제시한 인수가격이 실제 기업 가치보다 높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WD가 합작사 관계를 빌미로 싼 값에 도시바의 알짜사업인 반도체 사업부를 사들이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WD가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매각에 영향을 미칠 법적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에 입찰자 선정이나 절차 진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