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선 공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아메리카 퍼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입력 2017-04-1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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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트럼프의 대선 공약들이 하나둘씩 틀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달 29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가운데 대선 공약을 실현하는데 있어서의 벽의 두께가 더할 나위없이 선명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요 무역 상대국의 환율 정책에 관한 미 재무부 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주요 공약에서 후퇴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약 3개월 간 입장을 바꾼 건 이뿐 만이 아니다. 12일에는 미국수출입은행,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등 그동안 비판의 화살을 쏘아붙였던 대상들에 대한 입장을 모조리 바꿨다. 또한 그는 취임 직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의료보험개혁 법률(오바마케어) 폐지에 나서겠다고 공약했지만 막상 해당 사안들이 막 다른 골목에 몰리면서 보류나 포기 쪽을 선택했다. 지난주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미사일 공격은 트럼프가 선거기간 견제하던 무력 개입의 일환이었다.

물론 대통령이 취임한 후 대선 공약 실현에 고전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쿠바 관타나모 미군 기지의 테러 용의자 수용 시설을 폐쇄한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정적자 대폭 확대와 경기 둔화에 시달렸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의료보험제도 개혁을 실현하지 못했다. 다만 이들 역대 대통령은 이러한 야심찬 목표 달성에 대한 노력이 정치적 역풍에 직면했음을 인정했다. 취임 직후 극적인 변화를 놓고 허풍 떠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점이다.

트럼프는 선거기간에도 자신의 공약들을 과장시켜 내세웠지만 이후 수시로 입장 전환이나 이전과 모순되는 발언을 내놨다. 2016년 3월 공화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유연하지 않은 사람이 성공한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며 입장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미덕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하지만 트럼프가 전하고 싶었던 핵심 메시지는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립 서비스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자신은 공약대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가진 후보 수락 연설에서 “나만큼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만이 상황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WSJ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수개월동안 환율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을 얻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입장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중국이 미국 제조업의 고용을 빼앗아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는데 있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역부족이었다던 대선 때의 메시지와 대조적이다.

트럼프의 과장된 발언들을 유권자들이 너그럽게 봐 줄 수도 있지만, 무역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오랫동안 괴로울 수 있다. 트럼프 자신도 무역에 관한 입장 표명없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 하지만 그는 NAFTA 재협상이나 새로운 관세 도입 등 가장 대중 영합적인 느낌이 강한 공약에서는 별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 차석 대표대행을 역임한 웬디 커틀러는 블룸버그통신에 “경제 정책, 특히 통상 정책을 실시하는데 있어서의 복잡성은 트럼프 정권의 예상을 웃돈다”며 다른 동맹국과 의회 양쪽과의 조정 필요성 탓에 실현에 방해를 받은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미국수출입은행에 대한 견해를 바꾼 이유에 대해 “중소기업, 벤더기업이 매우 큰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와 중국의 역사적 경위를 설명했다며 사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또한 오바마케어 대체 법안의 표결을 공화당이 포기했을 때는 “헬스케어가 이렇게까지 복잡할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커틀러는 트럼프의 힘겨운 출발은 경제 문제에 대한 정권 내 분열로 일부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USTR 대표로 지명한 로버트 라이시저는 아직 의회 승인을 받지 못했다. 중국에서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호언한 트럼프이지만, 이것도 실현되지 않았고,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대로라면 트럼프가 내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도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의 바르샤 알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에 화학무기를 사용, 미국이 순항 미사일로 시리아를 공격한 것은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에서 벗어난 것일 뿐 아니라 대선 당시 관계 개선을 주장했던 러시아를 반대로 멀리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한 기자 회견에서 “미·러 관계는 사상 최악”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2일에는 또 입장을 바꿔 “세계는 혼란 상태에 있다”며 “우리가 일을 완료한 단계에서는 계속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세계의 경찰 역할에 적극적인 자세를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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