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여론조사, 그리고 ‘문재인 대세’와 ‘안철수 바람’

입력 2017-04-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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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모두 기억하리라 믿는다.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전체 의석의 과반 확보는 물론, 독자적으로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180석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와 정반대였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얻은 의석은 고작 122석, 유례없는 대참패였다. 반면 100석 정도로 예측되었던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을 얻어 1위를 했고, 20석 안팎을 얻을 것이라 했던 국민의당 역시 그 두 배에 가까운 38석을 얻었다.

이 선거만이 아니다. 여론조사는 수시로 틀렸다. 때로는 원숭이가 찍어도 그보다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왜 이럴까? 전문적인 문제라 깊이 이야기할 입장이 못 된다. 하지만 당장에 샘플, 즉 응답자 구성에서부터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일례로 이번 대통령 선거는 꼭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90% 가까이 된다는데,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조사의 결과일까? 선거에 관심이 없거나 투표를 하지 않을 사람은 아예 응답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조사에서 이런 사람들은 빠지게 되는데, 이들을 뺀 조사가 어떻게 정확할 수 있겠나.

같은 맥락에서 얼마 전까지 있었던 ‘문재인 대세론’, 즉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그렇다. 잘못된 샘플, 즉 잘못된 응답자 구성이 만들어 낸 착시였을 가능성이 크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문 후보는 충성심이 강한 지지자들이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떤 경우에도 문재인은 안 된다’라는 식의 강한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도 유난히 많다. 여론조사에서 이들은 각기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먼저 지지자들은 일찍부터 지지 후보를 확정했을 테고, 그런 만큼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부감이 큰 사람들은 달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지 후보를 확정 짓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응답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문 후보 지지자들이 과다 표집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편향성이 ‘대세’라는 착시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제 아침 어느 주요 언론이 밝힌 지지도는 문재인 38.5%, 안철수 37.3%, 이제 판은 ‘문재인 대세’가 아니라 완전한 ‘양강구도’다. 문 후보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이 문 후보를 꺾을 가능성이 큰 안철수 후보를 지지 후보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여론조사에도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 후보에 대한 지지도 상승은 여론조사의 응답률 상승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유권자의 마음이 변했느냐? 그래서 ‘문재인 대세’가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양강구도’로 바뀐 것인가? 아니다. 원래 이렇게 되게 되어 있었다. 여론조사가 이를 짚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의 ‘안철수 바람’도 그렇다. 안 후보가 이끈 지지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난 것보다 약할 수도 있다. 반대로 문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 안 후보 쪽으로 다 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 투표에서는 더 강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모두 엉터리라는 말이 아니다. 여론조사가 필요 없다는 말도 아니다. 조사 이전에 현상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라는 뜻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조사하고 제대로 해석하라는 말이다.

언론기관도 그렇다. 제대로 된 조사와 그렇지 않은 조사를 구별해 주었으면 한다. 조사나 결과에 대한 해석 또한 제대로 해 주었으면 한다. 자동응답기에 과도하게 의존한 조사나 응답률이 턱없이 낮은 조사를 그대로 보도하는 모습 등에 놀라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믿지 않는다면서 믿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정치권과 그 주변은 더욱 그렇다. 있지도 않은 ‘대세’에 줄을 서고, 있지도 않은 ‘바람’에 춤을 춘다. 그러는 사이, 국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토론은 뒤로 가고, 상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기 위한 ‘네거티브’가 판을 친다. 민주주의를 위한 이기(利器)가 되어야 할 여론조사가 이렇게 쓰여서야 하겠는가? 좀 더 잘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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