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로미어를 겨냥한 항암치료제의 기회가 다시 찾아온걸까?
텔로머라아제 역전사효소(TERT, Telomerase reverse transcriptase)는 대부분의 암종양이 지속해서 발현하는 항원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TERT는 항암치료의 중요한 타깃으로 주목받았지만 지난 10년간 TERT를 이용한 백신은 임상에서 큰 효과를 얻지 못하면서 점차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최근 네이처 클리니컬 온콜로지(Nature Clinical Oncology)에 '항암 면역치료제로 TERT의 두번째 기회(A second chance for telomerase reverse transcriptase in anticancer immunotherapy)'란 제목의 리뷰논문이 발표되면서 텔로머라아제를 항암치료제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재조명받고 있다.
Maurizio Zanetti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UCSD) 교수는 리뷰에서 이제까지 텔로미어 기반 항암제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고 암진행과 TERT 유전자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더 나아가 면역치료제로서 TERT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항암타깃으로 주목받던 항원인 만큼, 관련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세포수명을 연장하는 텔로머라아제의 핵심 구성요소 'TERT'
암세포가 가지는 큰 특징은 ‘불멸성(immobility)’으로 세포가 끊임없이 분열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악성(malignant)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암이 진행되는 발암(carcinogenesis)단계로 접어들고 통제 불가능한 무한분열이 시작된다. 그리고 암세포가 이러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기저는 세포의 핵 안, 염색체 말단에 존재한다.
염색체 끝 부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염기서열 TTAGGG가 무수히 반복(약 1500~2500번)된 부위를 볼 수 있다. 텔로미어(telomere)라 불리는 이 부위는 유전정보는 보관하지 않으면서 세포분열(proliferation)을 할 때마다 줄어드는 매우 흥미로운 특징을 가진다. 자연적으로 유전자 복제를 하면서 한쪽 말단이 소실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데(end replication problem) 텔로미어는 말단을 덮어(capping) 보호하는 역할을 해 중요한 유전정보를 유지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텔로미어가 항상 줄어들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라는 효소가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려 세포수명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 '텔로머라아제로 계속 세포수명을 늘리면 노화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란 궁금증이 들지만, 실제 몸안에서 이를 이용하는 것은 줄기세포 그리고 무한히 분화하는 불멸의 특징을 가진 암세포다.
텔로머라아제가 텔로미어를 합성하기 위해선 유전정보(RNA)와 이를 바탕으로 텔로미어 DNA 서열을 합성하는 역전사 효소 TERT(telomere-elongating reverse transcriptase enzyme)로 구성된다. 그리고 다양한 항암제가 암을 치료하기 위해 TERT라는 단백질을 겨냥한다.
◇TERT, 항암타깃으로서 차별성..."대부분 암종에서, 암세포에서만 특이적 발현"
텔로머라아제가 암치료를 위한 좋은 타깃인 이유는 암세포가 공통적으로 발현하고 있는 요소인 동시에 일반세포에서는 거의 발현이 안되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에서 유래한다. 때문에 특정항원을 겨냥해 암세포를 공격한다고 해도 동시에 정상세포가 손상되는 건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일반세포에서는 극히 적은양의 TERT가 발현한다.
이외에도 TERT는 각 스테이지의 대부분 종양 암세포에서 계속적으로 발현하는 특징을 가진다. 최근 연구에서 추가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TERT가 암줄기세포(cancer stem cell), 유리종양세포(circulating tumor cells), 전이세포까지 다양한 종류의 암세포에서 발현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이가 종양이 진행되고, 항암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암진화(cancer evolution)에도 기여한다는 것. TERT라는 하나의 항원을 겨냥해 넓은 항암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상에서 이러한 특징을 활용한 암백신의 형태는 다양하다. TERT를 구성하는 일부 펩타이드, TERT 유전자를 암호화하는 mRNA 등을 직접 주입하거나 또는 수지상세포(DC, Dendritic cell)와 같은 운반체를 이용해 체내로 전달하는 식이다. 몸속에서 펩타이드 자체가 항원으로 작용해 이를 인식한 T세포가 해당서열을 가진 암세포를 공격하거나, 혹은 펩타이드를 항원제시세포인 수지상세포에 주입해 T세포를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세부 작용기전에는 차이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TERT를 통해 T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원리다.
◇지난 10년간 TERT를 기반으로 하는 항암제가 임상에서 실패한 이유
앞선 설명처럼 TERT가 항암치료에 이용되는데 여러가지 장점을 갖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겨냥하는 항암치료제가 번번이 임상에서 충분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앞으로의 가능성을 재고해보자.
Maurizio Zanetti 교수가 리뷰 논문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실패원인은 암종양에서 TERT 변이가 생겼을 가능성이다. 암세포의 표면에서 발현하고 있는 TERT 펩타이드가 가진 서열이 원래의 서열에서 바뀌었기 때문에 TERT를 겨냥한 암백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 변이 종류는 암종, 환자 그리고 종양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다음으론 암백신으로 T세포의 활성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겠다. 첫번째 이유는 기존 암백신의 TERT 형태가 T세포와 너무 강한 결합력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면역관용 메커니즘을 통해 T세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논문에서는 T세포가 발현하는 면역분자인 HLA의 결합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면역원성이 큰 물질을 선정하는 것을 제안한다.
두번째로는 기존 암백신이 다양한 클래스의 T세포를 활성화하도록 디자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충분한 항종양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선 CD4+ T세포와 CD8+ 세포독성 T세포가 동시에 고려돼야 하며, 최근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항원을 효과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종류의 CD4+ T세포의 협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종양미세환경이 가진 면역억제환경으로 T세포의 활성이 억제돼 암백신이 충분한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대장암 환자에서 Treg 세포(regulatory T cell)가 TERT 항원에 대한 기억반응을 억제한다는 것이 보고됐다. 이 뿐만 아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면역관문억제제의 타깃인 PD-1, CTL-4와 같은 면역분자도 T세포의 작용을 억제하며 MDSCs, 대식세포, 수지상세포 등 다양한 면역억제세포가 이에 관여한다. 대사분비물질, 저산소증 등도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종양미세환경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암백신이 항암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핵심열쇠라는 설명이다.
◇다시 떠오르는 TERT, 항암제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
Maurizio Zanetti 교수는 "TERT는 암세포가 불멸성을 갖는 것 외에도 종양화, 전이, 암진화 등에 기여하기 때문에 TERT를 겨냥하는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환자가 가진 유전정보를 분석하는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술이 발달하면서, 암화가 진행되면서 환자특이적으로 생기는 신항원(Neoantigen) 백신이 부각되고 있다. TERT 변이도 환자에 따른 맞춤형 백신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일차적으로는 TERT, 혹은 TERT의 발현을 조절하는 프로모터 부위에 생기는 변이종류를 바이오마커로 삼아, 임상에서 환자의 TERT 유전자를 분석한 다음 적합한 환자군을 선별해야 된다.
이후 선별된 환자가 가진 암종에 따라 반응률이 높은 면역관문억제제를 병용투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TERT 기반 암백신이 T세포를 활성화하는 것을 돕기 위한 전략이다.
◇국내에선 젬백스가 TERT 기반 암백신 시도..."차세대 TERT 물질 개발中"
논문에서는 23건의 임상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임상건에서 TERT 암백신에 대해 높은 반응률을 보인 그룹을 나눠서 분석해 봤을 때, 환자의 전체생존기간(OS, overall survival)이 유미하게 증가한 6건의 임상을 소개했다. 이중 4건이 국내기업인 젬백스앤카엘의 GV1001(TERT p611)로 췌장암, 비소세포폐암, 말기 고형암의 예시가 언급돼 있다. Maurizio Zanetti 교수는 "향후 임상적으로 TERT 치료제에 대해 반응성이 높은 환자에서 종양내 T세포 침투가 증가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GV1001은 텔로머라아제의 구성 요소 중 인체 내에서 면역원성이 상대적으로 큰 TERT의 611-626번째 아미노산(단백질 최소단위)으로 이뤄진 펩타이드이다. 젬백스엔카엘은 여러가지 후보 물질 중 T세포가 가장 크게 반응하는 펩타이드를 선정했다.
젬백스앤카엘은 전임상에서 GV1001에 의해 암세포를 직접 공격해 제거하는 CD8+ T세포가 활성∙증식하고 TNF-α, IL-2를 포함한 다양한 면역 활성분자가 분비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CD4+ T세포가 활성화돼 세포독성 T세포가 감염성 입자를 없앨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고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는 분자를 분비하는 것을 관찰했다.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3상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젬백스앤카엘은 바이오마커를 설정해 임상에 재도전하고 있다. 젬백스앤카엘은 영국에서 진행된 췌장암 임상3상(TeloVac Study)에서 혈중 이오탁신(Eotaxin)의 수치에 따라 높은 이오탁신 수치를 가진 환자에서 14.8 개월의 생존율을 보이며 낮은 이오탁신 환자군의 7.9개월과 비교해 유의미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오탁신은 백혈구의 일종인 호산구(eosinophil)가 분비하는 면역신호분자다.
젬백스앤카엘는 이오탁신을 바이오마커로 규명해 이를 근거로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이오탁신 지표가 높은 환자를 대상으로 유효성을 입증하는 국내 3상 임상시험을 병행하는 조건으로 리아백스주(품목명) 시판허가를 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GV1001가 면역항암제로써 가진 잠재력을 바탕으로 비소폐암에서 적응증을 확대할 계획이다"라며 "최근 GV1001이 가진 다중기전효능이 밝혀지면서, 차세대 TERT 펩타이드 신약을 발굴하기 위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