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전두환 회고록’이 촉발한 것들

입력 2017-04-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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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5·18사태는 폭동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광주사태 당시 국군에 의한 학살이나 발포 명령은 없었다”…. 궤변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난 광주사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었다” “대통령이 됐다는 원죄로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 등 희생양 코스프레까지 서슴지 않았다. 사법적 판단까지 내려진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수많은 사람이 목격한 진실마저 부정하며 자신을 희생자라고 강변한다. 최근 출간돼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전두환 회고록’이다.

‘전두환 회고록’은 사게 한다. 37년 동안 먹지 못한 딸기를. 1980년 5월 눈앞에선 민주화를 외치던 수많은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검에 죽어갔다. 아스팔트에 선홍빛 핏자국을 남긴 채. 전두환을 비롯한 정치군인과 언론에 의해 민주화를 열망하던 광주는 폭도의 도시로 철저히 유린당하며 유폐됐다. 1980년 5월 광주에 넘쳐나던 딸기는 어린 학생에게 공포와 분노를 동시에 안겨준 시민의 핏자국을 연상시키는 가슴의 화인(火印)이 됐다.

떠올리게 한다. 이성부(李盛夫) 시인과 소설가 한강을. 이성부가 시 ‘유배 시집5’에서 “나는 싸우지도 않았고 피 흘리지도 않았다/ 죽음을 그토록 노래했음에도 죽지 않았다/… 비겁하게도 나는 살아남아서/ 불을 밝힐 수가 없었다/ 화살이 되지도 못했다…”라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토로한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 죽은 자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괴로워했다. 한강이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언명(言明)한 것처럼 37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일부 극우 인사의 조작과 거악(巨惡)의 폭압이 광주의 진실과 사실을 훼손하고 짓밟고 있다.

소환하게 한다. 세 편의 영화를. “꽃잎이 지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영화 ‘꽃잎’에서 계엄군의 총에 어머니가 죽던 모습을 눈앞에서 보며 미쳐버린 소녀가 부른 노래와 “아니야, 우린 폭도가 아니야!”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최후를 맞이한 광주 시민의 마지막 절규, 그리고 “26년이여, 지금을 놓치면 앞으로 우린 뭐 할 수 있겄냐, 얼른 쏴야!” 영화 ‘26년’에서 광주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며 대통령까지 된 사람에게 겨눈 유가족의 총부리를. 일부 극우단체가 허위 내용이라며 상영 중단을 요구했던 이 영화들마저 두 눈으로 목격한 1980년 5월 광주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

부르게 한다. 두 곡의 노래를. “꽃잎처럼 금남로에 흩어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1980년 광주의 5월을 처연하게 적시한 ‘5월의 노래’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론 분열을 조장한다는 억지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조차 제창을 못 하게 했지만, 여전히 광주를 기억하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보게 한다. 아돌프 히틀러가 총애했던 나치 정권의 선동가 요제프 괴벨스를.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선동은 거짓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해명에는 수십 건의 증거가 필요하다”라며 거짓과 조작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종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추악한 괴물 괴벨스를.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찬 ‘전두환 회고록’은 강력하게 요구하게 한다. 37년 동안 은폐된 5·18 광주의 진실을 밝히고 미완의 민주화를 완성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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