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남긴 말이다. 싸워 보기 전까지는 누구나 다 이기려는 계산이 있겠으나,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선 ‘선빵(선제공격)’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의미일 거다. 정신없이 날아드는 레프트·라이트 훅과 잽 세례에 휘청거리다가 코너에 몰려 결국 카운터블로도 날려보지 못하고 녹아웃되기 싫다면 말이다.
타이슨의 이런 명언을 잘 새기고 치밀한 계산하(下)에 실천에 옮기는 인물이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펴낸 자신의 대선 공약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불구가 된 미국-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Crippled America: 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 타이슨의 명언을 인용하며 이런 자세를 분명히 했다.
그에 따르면 “군사력을 키워야 하는데 현재 미국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런데도 미국은 다른 나라의 평화를 지켜주면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다. 앞으로는 그 대가를 받아 미국의 군사력을 강화할 거다. 군 투자는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더이상 ‘국제 호구’ 노릇은 그만두겠다”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결연한 의지의 표현 같기도 하지만, 사실 그 밑바탕에는 중국에 대한 강한 콤플렉스가 깔려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중국 증시가 재채기만 해도 독감에 걸리는 미국 증시,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어 미국의 3대 교역국이 된 중국, 미국 최대 채권국이 된 중국, 위안화 약세에 흔들리는 미국 무역수지 등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이 못마땅한 것이다. 명실공히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인데 말이다.
‘중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트럼프가 가장 급선무로 꼽은 게 바로 ‘강한 군대 만들기’이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에 ‘선빵’을 날리겠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국방비를 늘려야 하는데, 동맹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을 늘려 받으면 굳이 미 연방정부 예산을 증액할 필요가 없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트럼프의 10억 달러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비용 청구서와 맞닿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보복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 당사국인 미국이 중재에 나서 주길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역성은커녕 트럼프로부터 난데없이 10억 달러의 청구서를 받았으니 말이다. 여기다 한술 더 떠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 또는 종료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에 여념이 없는 틈을 타 허를 찌른 것일 수도 있지만 트럼프의 취임 100일간의 행적을 감안하면 그렇게 단순화할 수만도 없다.
문제는 트럼프의 10억 달러 청구서 발언 이후 계속되는 미국 측의 말 바꾸기에도 우리는 심도 있는 대응책 마련은 고사하고 그저 끌려다니며 해명하기에만 급급한 현실이다. 일반 사람들도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려 애쓴다. 하물며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모습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트럼프의 공약집만 봤어도 최소한 다음 수(手)를 추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동맹국과의 합의는 언제든 뒤엎을 수 있는 사람이 트럼프이다. 트럼프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동맹국이라기보다 자국 군비 강화와 경제 활성화, 궁극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달성하기 위한 희생양일 수도 있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탄생한다. 새 대통령에게 허니문은 없다. 바로 실전이다. 심지어 엄청난 핵주먹이 기다리고 있다. 5년 내내 잽에 시달리다 녹아웃할 건지 회심의 한 방을 날리고 멋지게 링에서 내려올 것인지. 유력 대선 주자는 타이슨의 말처럼 ‘한 대 처맞기 전에’ 이미 탐색전에 돌입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