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煙문화로 본 일본 금연정책] 담배 필 권리도 보장…흡연자·혐연자 ‘共生의 길’ 보였다

입력 2017-05-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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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가능·불가구역 분리…공동이익에 필요 공간 공감…공공디자인 녹인실내형 흡연소 주목

▲도쿄 오다이바에 위치한 쇼핑 아웃렛 ‘비너스포트’의 폐쇄형 흡연 부스.
▲도쿄 오다이바에 위치한 쇼핑 아웃렛 ‘비너스포트’의 폐쇄형 흡연 부스.

#1. 4월 1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역.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복합버스환승센터를 새로 지어 혼잡한 인파 사이로 60대 중년 신사가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려다 흡연 가능구역으로 들어섰다. 유리문 너머 희뿌연 공기 사이로 그가 사라졌다.

#2. 벚꽃이 한풀 잦아든 도쿄의 4월 14일 도심 속 산책로로 유명한 메이지 신궁 정문 앞. 연인이나 친구들끼리 반갑게 인사하는가 하면,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들이 몰려 지나간다. 안으로 푹 파인 벽 모퉁이에는 열댓 명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바닥에선 가래침이나 더러운 오물을 결코 찾아볼 수 없다.

▲담배업체 JT는 신주쿠 등에 무료 흡연공간 ‘메비우스 무브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담배업체 JT는 신주쿠 등에 무료 흡연공간 ‘메비우스 무브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흡연 가능한 장소가 점점 줄다 보니 금연을 결심했고, 이를 위해 아직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하라주쿠 메이지 신궁 앞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한 회사원은 “10년 전쯤부터 분연 정책을 체감했고, 도쿄가 가장 엄하게 단속하고 있다”면서 도쿄의 흡연 가능·불가 구역 분리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라고 했다.

일본의 분연(分煙ㆍ흡연구역과 금연구역을 나눔) 문화가 바람직하게 평가받게 된 배경에는 흡연자와 혐연자 각각의 권리를 존중하고, 이들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 주효했다. 이병호 국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국민 권리존중을 위한 흡연공간 가이드라인 연구’에서 “흡연공간이 격리되어야 할 혐오시설이 아니라 공동이익(Public Benefit)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라는 필요성 인식을 통해 흡연자와 혐연자 모두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일본의 분연 문화 역시 이러한 인식과 맞닿아 있다.

▲도쿄 오다이바 ‘비너스포트’의 폐쇄형 흡연 부스는 기본 재떨이 기능 휴지통 외 커다란 노출형 휴지통을 추가 설치해 쾌적한 분연 문화 정착에 앞장서고 있다.
▲도쿄 오다이바 ‘비너스포트’의 폐쇄형 흡연 부스는 기본 재떨이 기능 휴지통 외 커다란 노출형 휴지통을 추가 설치해 쾌적한 분연 문화 정착에 앞장서고 있다.

공공 디자인 영역으로서 장점이 녹아있는 일본의 쇼핑몰 폐쇄형 흡연 부스는 인상적이다. 실제로 살펴본 도쿄 오다이바의 대표적 쇼핑 아웃렛인 ‘비너스포트’의 흡연 부스는 효율적인 시설물로서 합격점이다. 커다란 노출형 휴지통이 몇 평 남짓한 흡연공간에 기본 재떨이 기능의 휴지통 외에도 4개가량 설치돼 있다.

흡연구역의 휴지통 배치가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공공장소의 단순한 픽토그램(사물·시설·행위·개념 등을 상징화한 그림문자로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 상징문자)을 넘어서 쾌적한 분연 문화 정착을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샘 씨와 박경진 한양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논문 ‘개방형 흡연구역 환경시설물의 디자인 요소와 행위유도의 관계성 연구’에서 “흡연구역 내 휴지통이 흡연자 수에 비해 적지 않아야 하며, 동시 다발적으로 쓸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렇지 않으면 휴지통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인 ‘버리는’ 것마저도 지켜지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도쿄 시부야의 히카리에몰 역시 흡연 모습을 외부 시선과 차단한 독립형 흡연공간이다. 사무동, 쇼핑몰, 콘서트홀 등이 입점한 층마다 실내 독립형 흡연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JT의 대표 브랜드인 메비우스의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파랑, 블랙, 우주(space)를 콘셉트로 3평 남짓한 공간이 꾸며져 있다. 스틸 질감의 너비가 좁은 노출형 휴지통 4개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어두운 흡연공간을 밝히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고, 천장에는 배기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부스 밖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 폐쇄형 공간으로, F&B, 사무동 등 층마다 내부 인테리어가 상이하다.

겹겹의 미닫이문을 거쳐 입장하고 머리 위로 통바람을 쏘아 탁한 실내 공기를 순환시키기도 했다. 설치 가이드라인에 의해 기류 확산이 적은 미닫이문을 채택한 것이며, 흡연자를 실내 안쪽으로 유인해 금연구역으로 냄새가 누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한 여성은 “최근 쇼핑몰에는 흡연소가 설치돼 있다. (실내 독립형 흡연구역은) 흡연자가 밖에 나가 안 피워도 되니까 좋고, 공기도 깨끗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좋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도쿄 신주쿠역 부근에 설치된 폐쇄형 흡연공간.
▲도쿄 신주쿠역 부근에 설치된 폐쇄형 흡연공간.

세계 1위의 일평균 전철 승하차 유동인구(약 400만 명)를 기록한 신주쿠역 역시 실내형 흡연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출입구 앞유리 차단벽을 통해 공간 분리를 더욱 꾀하고 있다. 흡연자 모습이 간간이 비치는 나무 질감의 외부 인테리어가 수직 형태로 꾸며져 있다.

국내 한 전문가는 “독립형 흡연공간은 공공 공간에 설치되는 만큼 주변 환경 및 타 시설물과의 조화를 고려해 설치돼야 하며,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투자를 통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흡연이라는 행위 때문에 파생되는 부정적 결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물리적 시설이 적용돼야 한다”고 피력한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새롭게 정비된 신주쿠역 시외버스통합환승센터 인근 출구에는 노년의 순찰자들이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이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모습도 속속 발견할 수 있었다.

40대 한 일본 흡연 남성은 “도쿄에는 단속요원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고, 실제 이 때문에 길거리 보행 흡연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일본에서는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흡연하면 2000엔가량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인들은 다른 생활과 습관으로서 흡연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일본의 담배를 생산·판매하는 JT는 센다이 등에 ‘메비우스 무브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메비우스 무브 라운지는 무료 흡연 공간으로 신분증 검사를 통해 입장할 수 있다. 입장 시 3가지의 담배를 무료로 접할 수 있으며 안내원이 신상품을 설명한다. 등받이가 없는 스툴(의자) 형태로 한 테이블당 두세 명이 대화하며 끽연을 즐길 수 있다.

그밖에 유료 흡연 시설도 일본에서 2012년부터 주목받고 있다. ‘담배 한 모금’이란 뜻의 ‘잇푸쿠’는 약 50엔 상당의 1회 이용료를 받는다. 담배 냄새가 배지 않는 광 촉매제를 벽면에 활용하는 등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으며, 전자화폐 ‘파스모’를 통용한다.

도쿄 거리 곳곳에서 만난 흡연자들은 거리 근접성을 흡연구역 배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으며, 비흡연자들은 개방형보다는 폐쇄형 흡연구역을 선호했다. 학계 전문가나 일반인은 일본의 독립된 흡연공간 마련에 대해 △혐연자의 간접흡연을 차단하고 비 흡연자와 학생, 청소년의 모방심리와 흡연 군중심리 감소 △거리 흡연 벌금 부과에 대한 명분을 마련함과 동시에 이중과세에 대한 부정적 의식 감소 △독립형 흡연공간을 통해 보행흡연과 길거리 안전사고 감소, 담배로 인한 2차 피해와 손실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시민 안전을 위한 사전적 조치로서의 기능에 부합한다고 평가한다.

국내 담배 업계 관계자는 “흡연공간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가시적 효과를 거두려면 설치 후 지속적인 환경 개선과 문제 요소 해결을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설치에 따른 재원 마련, 흡연 행태와 위치 선정, 시설에 대한 디자인과 검증, 여론조사 등 다양하고 심도 있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꽃들 기자 flowers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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