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 박근혜 정부의 성과로 내세운 정책들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일부 정책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과 맞물려 대선 이전부터 흔적 지우기가 시작됐고, 정권 교체 이후에는 폐기하는 정책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18일 정부에 따르면, 중앙부처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정부의 간판급 정책들을 전면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기관 개혁의 성과로 내세운 성과연봉제는 궤도 수정에 나섰고, 경제활성화법안인 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도 법안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 통과를 담보하기 어렵게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였던 역사교과서는 완전 폐기 수순에 돌입했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정책도 없애는 작업이 한창이다.
◇성과연봉제·규제프리존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전면 재수정 = 박근혜 정부의 공공개혁기관 핵심 과제였던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실상 전면 대수술에 돌입했다. 성과연봉제는 지난해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공기관 도입을 강하게 추진했던 정책이다. 박 전 대통령의 언급 뒤 5개월도 채 안 된 6월 10일에 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90개 등 목표 대상 120곳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할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간부직에 국한되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직원들에게까지 확대, 연공서열의 후진적인 체계를 극복하고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를 조성했다”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기류는 문재인 정부 들어 확 바뀌었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노사 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에 대해 재협상을 검토하고 있다. 또 성과연봉제 미도입 공공기관에 부여하기로 했던 임금동결 등 페널티도 없애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는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에 공약한 ‘성과연봉제 원점 재검토’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박근혜표’ 경제활성화 법안인 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수정법안을 내놓지 않으면 국회 처리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별로 미래성장을 견인할 바이오헬스, 스마트기기, 자율주행자동차 등 27개 전략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네거티브 방식(금지 조항 외에는 모두 허용)’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게 골자다.
의료 민영화를 포함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정부가 5년마다 서비스산업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기재부에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를 설치해 주요 정책과 계획을 심의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현재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두 법안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치권에 통과를 호소할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인 법안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여당으로 바뀐 더불어민주당은 규제프리존법은 재벌 특혜를, 서비스발전산업기본법은 의료민영화를 각각 우려해 우회적으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역사교과서 폐기·문화융성 폐지 절차 = 역사교과서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화를 발표한 지 1년 7개월 만에 완전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2015년 10월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힌 뒤 교육부는 교과용 도서 구분 고시를 개정해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만 발행하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국정 교과서 최종본이 공개된 이후에도 반대 여론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한발 물러서 국정과 검정을 모두 인정하고 학교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이른바 ‘국·검정 혼용’ 체제로 바꿨다.
그러나 문 대통령 취임 직후 국정 교과서 폐기 지시가 떨어지면서 역사 교과서는 다시 검정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문 대통령은 12일 교육 분야 첫 업무 지시로 국정교과서 폐기를 주문했다.
이어 후속 조치로 2018년부터 역사교과에 적용 예정인 국·검정 혼용제를 검정제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교육부는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검정 교과서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구분 재수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재수정안을 보면 앞으로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는 검정 교과서만 사용하게 되며 지난해 발간된 국정 교과서는 폐기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역점을 뒀던 창조경제·문화융성 등의 정책도 사라지고 있다. 두 정책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과 맞물리면서 올해 초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해 초 박 대통령이 신년 업무 보고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통한 성장 동력 확충’이라는 주제 아래 해당 부처 보고를 받았던 것과 대조적인 분위기다.
같은 맥락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 말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담당했던 문화창조융합본부를 폐지했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인 문화융성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사업으로 2015년 2월 시작됐다. 2019년까지 7000억 원대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최순실·차은택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주요 사업이 사실상 중지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24년 만의 외교적인 성과’라고 자화자찬한 한일 위안부 협상도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