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단역 배우들의 열정은 아름답지만

입력 2017-05-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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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저에게 배우란 가장 듣고 싶은 말입니다.”, “연기하는 그 순간이 가장 설레는 순간입니다.”… 배역 이름조차 없는 행인 1, 여고생 2, 환자 3 등 드라마와 영화 단역 배우들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심경과 의지를 드러내는 드라마 ‘김 과장’의 OST ‘꿈을 꾼다’를 부른다. “정신없는 하루 끝에/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꿈을 꾼다/ 잠시 힘겨운 날도 있겠지만/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나는 꿈을 꾼다”

어느 사이 이들을 바라보던 유해진, 천우희, 김혜수 등 스타들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영화 ‘밀정’에서 뛰어난 연기를 했는데도 부득이하게 편집돼 나오지 못한 어린 후배들이 많다. 이 영광은 그분들께 바친다.”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송강호의 단역 배우에 대한 헌사다. 3일 열린 제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김민지 등 단역 배우 33인이 펼친 공연이다.

이름조차 없는 배역이라 할지라도 연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 기쁘다며 배우라는 꿈을 향해 힘든 오늘을 견디고 있는 단역 배우의 간절한 꿈이 드러나 시상식장의 배우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감동했다. 그리고 좋은 배우가 되려는 이들의 꿈을 응원했다.

이들의 모습에서 힘겨운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젊은 단역 배우의 아름다운 용기와 도전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라며 조그마한 배역이라도 온 힘을 다하는 무명 배우의 소중한 열정도 느낄 수 있었다. 현재는 무명이지만 열심히 해 유명 배우, 더 나아가 시상식장의 송강호, 김혜수 같은 스타가 되겠다는 치열한 다짐과 의지도 엿볼 수 있었다.

단역 배우들의 꿈을 향한 힘찬 날갯짓을 다짐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슴 한쪽에선 또 다른 감정이 밀려온다.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의 비극이다.

“아빠가 (연예인 되는 것을) 반대하셔서 별로 좋은 얘기는 안 하신다. 조금은 지친다. 빨리 데뷔해서 아빠에게 이쪽 일이 진정으로 멋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다.” 안소진은 가수가 될 날만을 기다리며 연습생으로 4년여를 보내다 연예인 데뷔가 좌절되자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나이 스물세 살이었다. “사막에 홀로 서 있는 기분, 열아홉 이후로 쭉 혼자 책임지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내 방에서의 세상의 무게감이 너무 크게 느껴지고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공포가 밀려온다.” 배우 데뷔는 했지만, 작품 활동을 제대로 못 해 힘겨운 생활을 하던 신인 연기자 정아율은 스물다섯 되던 2012년 극단적 선택을 하며 배우의 꿈을 영원히 접었다.

매년 전국 130여 개 대학에서 방송, 연예, 영화, 실용음악 등 연예 관련 학과 학생 1만3000여 명이 쏟아져 나온다. 수도권 지역 연예 관련 학원은 1000여 개에 달하고 수강생만 4만8000여 명에 이른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연예인도 아닌 연습생 3명 모집에 2만 명이 몰렸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 인구 4%에 달하는 208만 명이 참여했다.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연예인 지망생과 신인 연예인은 급증하고 있지만 방송, 영화, 공연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요 인원은 많지 않다.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며 내일의 배우, 가수를 꿈꾸며 오랜 시간 땀과 눈물을 흘린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이 절망하고 있다. 힘들게 연예인으로 데뷔했지만, 상당수가 작품 출연과 무대에 설 기회를 잡지 못해 생활고 등 어려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연예계를 떠나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극단적 선택까지 한다.

고단한 현실을 견디며 배우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단역 배우들을 보면서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다. 연예인 지망 광풍(狂風)의 폐해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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