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창업과 융합에 역점을 두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사회적인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에 제도 개선 등 합의가 필요합니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17일 세종 국책연구단지에 있는 산업연구원 원장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미래 먹거리인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일시적인 유행으로 보거나 섣부른 예측을 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오랜 시간 걸쳐 이뤄지는 것이므로 길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업ㆍ융합ㆍ신뢰사회 구축’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 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파괴적인 기술에 의해 전체적인 경제 산업 구조가 바뀌는 것”이라며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새로운 기술 융합을 통한 신산업과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창업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창업이 활발하려면 규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그는 “(4차 산업혁명은) 새롭게 수익을 창출하는 쪽과 기득권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제도 개선을 통한 합의와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며“정부와 산업계가 합심해 창업과, 융합 그걸 이루기 위한 신뢰 기반을 형성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유 원장과의 일문일답.
- 보호무역주의와 산업 경쟁력 약화가 우리 경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출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수출 현황을 보면 전반적으로 가격과 물량이 상승해 추세적으로 당분간 수출 회복 기조를 유지하지 않을까 보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주로 반도체 부분이 굉장히 빠르게 늘고 있는데 그 이유는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디지털경제’와 맞닿아 있다.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제품 개발로 반도체 글로벌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석유화학이나 소재 부문도 유가가 상승하면서 가격이 올라 수출이 늘어나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수출 구조는 10대 주력 수출 상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단조롭다. 지역적으로도 미국과 중국 등 몇 개 지역에 치중돼 있고, 제품 구성도 자본재 중심으로 돼 있다. 대(對)중국 수출의 60%가 자본재다. 하지만 세계 경제 흐름은 다양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 지역 중심으로 개도국이 성장하고 있고, 품목별로 자본재보다 소비재 수출 비중이 커지고 있다. 제조품보다 서비스업 부문 수출 증가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도 뚜렷하다. 오프라인 무역보다 국가간 전자상거래 무역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무역구조 변화에 발맞춰 우리도 경쟁력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고, 국가간 전자상거래도 활성화 해 어느 한두 가지 개선책이 아닌, 종합적인 다변화ㆍ다중화 노력이 필요하다.”
- 서비스업 수출 확대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4차 산업화ㆍ디지털화가 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서비스업 수출이 늘고 있다. 기술과 지적재산권 수출에 이어 최근에는 빅데이터 등 데이터 수출 상품화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로 서비스 기업은 큰 공장이나 거대 자본 투자가 필요 없기 때문에 ‘스몰(small) 다국적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주력으로 하는 철강,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품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화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서비스업, 전자상거래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기정사실화 됐다. 우리 정부가 협상력을 갖기 위해 염두해 둬야 할 점은.
“한미 FTA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 FTA로 인해 한국만 이익을 보고 미국은 계속 우리한테 퍼준다는 인식이 많은데 우리는 미국의 주요 군사 물자수입국이며 미국에 투자도 많이 늘렸다. 그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우리도 미국에 충분한 이득을 주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좋겠다. 설령 한미 FTA가 폐기되더라도 관세율 상승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 감소는 13억 달러, 미국의 한국 수출 감소 폭은 16억 달러로 미국이 더 손해를 본다. 염두에 둘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정책이 다자간 협상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 양자간 협상을 하고 단일 기업 단일 품목에 대해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전략이다. 우리 기업과 잘 협력해 미국이 단일 품목이나 기업에 대해 제재를 할 가능성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사전에 파악해 미리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새 정부가 중소벤처기업부 확대 신설을 통해 중소ㆍ중견ㆍ벤처기업을 육성한다는 방침인데 이에 대한 생각은.
“시대적으로 중소ㆍ벤처기업을 육성 강화하고 경제를 운용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우리 경제가 대기업 위주로 성장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않으면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88%를 고용하고 고용의 질도 떨어지고 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를 만드는 것 역시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중소기업의 특수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중소기업 정책은 고(高) 지원 정책으로 성장을 가로 막고 한계기업이 잠재돼 있는 상황이다. 한계기업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정책만으로는 성장동력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 정책은 이런 특수성을 감안한 정책을 펴야 한다. 혁신 경쟁에 포커스를 맞추는 중소기업 정책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 정부의 기업 지원정책이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연구개발(R&D)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기업과 연계해서 정부가 중개자 역할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기업의 혁신 여건이 확실히 좋으니 지원을 하더라도 중소기업과 연계하도록 제도화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부 R&D 예산을 어떻게 쓰는게 효과적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무조건 중소기업에 주는 것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R&D 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기업, 학계, 국책연구소와 연계해 중소기업 R&D 운영상 개선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 새 정부 들어 미세먼지로 인해 에너지 산업 정책에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에너지 산업 경쟁력 부분에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에너지 정책 전환은 4차 산업혁명과도 연결돼 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스마트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개인별ㆍ기업별로 에너지 관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면 에너지 효율이 오르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중국의 제조업이 무섭게 쫒아오고 있고 최근 분석에 의하면 이미 수출 경쟁력 면에서 우리가 중국한테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격 경쟁력과 비가격 측면에서도 5년 내 중국이 따라올 수 있다. 산업 경쟁력 강화, 특히 중국 추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유병규 한국산업연구원장은
유병규 원장은 1988년 현대경제연구원에 들어가 25년간 경제·산업 연구에 매진하며 동향분석실장과 경제연구본부장 등을 지낸 유명 이코노미스트다. 민간연구소 출신으로는 처음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장에 선임됐다.
1960년생으로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또 한국경제학회 경제교육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과 산업전략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유 원장은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초빙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지속발전분과장 등을 거치며 경제 분야 연구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5월 산업연구원장으로 선임됐으며 임기는 3년이다.
△1960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 경제연구본부장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객원연구원 △한국경제학회 경제교육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지속발전분과장 △제20대 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