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오스트리아 태생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1899~1992)의 논리를 앞세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치명적인 자만(自慢)에 빠진 것이고,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하이에크의 영향을 받아 경제정책에 반영하기도 했다. 대처는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워 영국 경제를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켰고, 레이건은 지금도 미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이에크 이론에 대척점을 이룬 경제학자는 영국 출신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이다. 역사상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은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 필요성을 주창했다. 케인스는 1922년 ‘맨체스터 가디언’의 기고문을 통해 처음으로 케인스 진영 사상의 토대가 되는 ‘정부가 경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정부 개입론을 제시했다.
이 같은 케인스식 이론은 1929년 미국 대공항이 터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가 1970년대 석유 위기가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스태그플레이션이 휩쓸면서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80여 년이 흐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는 케인스식 이론이 다시 재조명됐다.
우리 헌법에서도 케인스식 경제이론을 뒷받침하는 대목이 있다. 헌법 제119조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국가가 균형있는 국민 경제 성장과 안정, 적정 소득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철학인 ‘J노믹스’에도 케인스식 이론이 가미됐다. 경기 침체의 원인을 유효 수요 부족으로 판단해 정부가 재정 확대 정책과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써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한국 경제에 적절한 처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에 대한 부작용의 목소리도 상존한다. 새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재벌 개혁을 비롯해 골목 상권 보호 강화, 통신요금 기본료 면제 등과 같이 이와 관련된 대기업이나 업종에 대해서 말이다. 더욱이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과잉 규제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돈다.
모든 경제정책에는 명암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지만 위기의 타개책으로 내세운 경제정책이 자칫 되살아 나고 있는 한국 경제에 또 다른 악재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 파리정치대 교수는 2012년 방한 당시 “위기가 확대 해석돼 과잉 규제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한 적이 있다. 현재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상황에 던져진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