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일자리 대타협, 어떻게 가야 하나?

입력 2017-05-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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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이야기를 하나 하자. 1970년대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병’을 앓았다. 투자는 줄고 실업률은 올라갔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복지 수요를 늘리면서 정부재정을 압박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의 여파였다.

1978년 제2차 오일쇼크가 오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투자와 고용은 더 위축됐고 정부의 복지지출 부담 역시 더 커졌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까지 기승을 부렸다. 노(勞)와 사(使), 그리고 정부 모두 죽을 지경이었다.

답답한 노·사 대표들이 모여 소위 ‘바세나르협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 협약에 의거해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했다. 또 노동시간 단축과 파트타임 근로 확대로 일자리를 나눴다. 대신 기업은 고용을 유지해 주었고 정부는 재정지원과 감세 등을 통해 기업과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덜 떨어지도록 배려했다.

독일도 그랬다. 2002년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자 슈뢰더 총리는 기업인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하는 노동개혁위원회를 만들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뤘다. 주된 내용 역시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시간 근로제도’였는데,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근로시간과 임금을 줄일 수 있게 했다. 즉 근로시간과 임금을 각각 30% 줄이면, 그 줄어든 임금의 상당 부분을 연방고용청이 보전해주는 방식이었다. 노동자들은 줄어든 노동시간을 이용해 교육훈련을 받았다. 그러면서 지식노동자가 되어 갔다.

두 사례 모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노동자들만 힘들게 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고용을 안정시켰고, 또 그럼으로써 사회경제적 갈등을 줄였다는 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도 수시로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 새 정부 역시 마찬가지. 일자리 문제가 중요한 만큼 이를 큰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국정기획위원장이 바로 이 두 사례를 언급하며 대타협을 위한 대기업과 대기업 노조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일면 이들 두 나라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조건 속에 있다. 이를테면 정부 지원에서 그 한계가 뚜렷하다. 독일은 줄어든 임금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지원했다. 해고가 늘면 실업급여를 더 지급해야 할 판, 이 돈을 고용 유지를 위한 보조금으로 쓴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실업급여부터가 그렇게 크지 않다.

조세감면 등의 조치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민부담률 25% 정도에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48%에 이른다.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고, 또 높다. 감면을 해줘 봐야 얼마나 더 해줄 수 있겠나. 결국 노와 사 모두가 더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타협 또한 어려워지게 된다.

타협에 따른 양보와 고통의 기간 또한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른 시일 내에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의 산업구조 조정이 어려운 데다 ‘고용 없는 성장’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잘못된 정치와 국정운영 구도이다. 유럽 국가들이 연정 등을 통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추진력을 확보한 데 비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독일만 해도 메르켈 정부로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개혁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정도의 정치가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꿈 같은 일이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의 자세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상대나 이해당사자들을 따라오게 하는 환경과 구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반성’을 하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맞아서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권력으로 누르는 것은 금물이다. 복종시킬 수는 있겠지만 끝내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

달리하는 말이 아니다. 상대를 적으로 보는 투쟁적 정치,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된 정부의 기업에 대한 압박 등을 보며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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