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권의 생글센글] 문재인 정부의 사회혁신

입력 2017-06-0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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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의 작은 원리들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청와대 비서실의 인선과 정부조직개편안의 조각들 덕분이다. 사회혁신수석, 사회적경제비서관, 사회적경제정책관 등이 사회와 경제에 미칠 영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민간의 참여와 정부의 협치, 시민의 권리에 기반한 연대와 호혜성,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살찌울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해본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사회혁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회혁신을 주제로 간담회가 열리기도 하고, 전문가들의 기고도 잇따르고 있다. 소중한 얘기들이 잘 담겨서 활용되길 바란다. 이 글 역시 그 중 하나다.

사회혁신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보자’ 정도로 정리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이 새로운 것에 집착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또한 특이하고 기발할 뿐인 목적 불명의 사업과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오히려 과거에 존재했던 방식들 중 관행과 비정상의 벽에 가로막혀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들부터 현실화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순서를 따진다면, 법적으로 보장된 것부터 그 실현에 제약이 있던 것들을 찾아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있는 조항과 다른 법 사이에 있는 충돌의 지점들을 찾아내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식으로 조정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해묵은 문제이지만 근로기준법만 잘 지켜져도 한국의 직장문화와 조직문화에 거대한 혁신의 바람이 불 것이다.

사회혁신의 목표는 일반적인 ‘실적’과는 다르다. 실적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오히려 사회혁신을 향한 에너지를 가로막을 수 있다. 어떤 정책과제와 프로그램이 사회혁신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당장의 실적보다 성과를 중심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적만 달성하고 성과가 없는 사업보다, 실적은 눈에 띠지 않지만 성과들이 축적되는 흔적이 포착되는 사업이 더 혁신적이다. 비슷한 이야기로, 실적을 달성하지 못해 실패라는 딱지가 붙은 사업에 대해서도 그 실패의 과정에서 등장했던 성과의 흔적들을 잘 수집해 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면 사회적기업 몇 개를 새로 만들어 고용을 증가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기업의 설립과 유지 과정에서 사회적기업의 직원들이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포착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사회적기업가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패를 하더라도 이를 통해 다시 성장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었다면, 그 실패는 혁신적이다.

사회혁신을 고민하면서 쉽게 떠오르는 것은 해외의 독특한 사례와 새로운 제도들이다. 물론 사회혁신의 토양을 만들기 위해 제도적인 기반이 형성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제도가 특정의 효과를 노릴 것이라고 쉽게 예측하고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차라리 혁신이 등장하는 무대의 밑바닥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살필 필요가 있다. 이는 연결이다. 혁신은 연결에서 온다. 다른 형태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다른 소재와 유통구조와 기술적 기반과 시장을 가진 비즈니스의 다발들이 우연히 혹은 다각적으로 만나 형성되는 접점에서 혁신은 시작된다. 곤충연구자와 음식물처리업체와 교육공무원과 금융인이 만나 학교의 잔반 처리 방식에 대해 토론할 수 있다면, 새로운 비즈니스가 출현할 수 있다. 혁신가와 혁신가가 연결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유의 분야를 가진 사람이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그래야 혁신의 토양이 강해진다.

사회혁신을 하는, 이른바 혁신가는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이다. 특정한 세대, 연령, 인종, 성, 학력을 초월한다. 모두가 혁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협력이 일상이 된다면 세상은 바뀐다. 서로 다른 배경과 직업을 가졌지만,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을 상상해보자. 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의 참여가 곧 혁신이다. 일상의 의사결정방식, 리더십의 구현,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과 공론화 이런 것들에 대한 시민의 경험이 쌓인다면 우리는 혁신의 붐을 일으킬 수 있다. 촛불집회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국가에서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것들이 힘들게 여겨졌던 기존의 관행과 낡은 틀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시정할 수 있는 것들은 시정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다. 또한 새로우면서도 행정의 안정성은 유지해야 하므로 무척 조심스러워야 한다. 사실은 좁은 길을 걷는 것이고, 길을 만들며 걷는 것이다. 지금 많은 이들이 이 어려운 길에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이고 함께 걸으면 길은 넓어지고, 광장은 흐른다. 사회혁신은 우선 이런 믿음에서 시작된다.

고대권 코스리(한국SR전략연구소) 미래사업본부장 accrea@kos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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