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청와대 비정규직에 주목하는 까닭

입력 2017-06-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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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산업1부장

우선 고백부터 해야겠다. ‘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같은 흰소리를 대통령 말씀이라 보도하며 기레기 만렙에 도전하던 그 시절, 어떤 핑계로도 세탁 못할 흑역사를 남겼다.

연일 이어지는 아무말 대잔치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받아쓰던 와중에도 반감과 의문이 고개를 드는 순간들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야근을 줄이자며 야근을 하게 만든 어느 날의 정책 브리핑이었다. 2015년 겨울 저녁, 박근혜 대통령은 모 수석비서관을 통해 예정에 없던 정책 브리핑을 실시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기업들이 야근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청와대에서 실로 오랜만에(?) 나온 옳은 소리였지만, 듣다 보니 은근히 부아가 났다. 저녁 끼니때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 브리핑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근을 줄이라는 대통령 말씀을 전하기 위해 청와대 직원들과 출입기자들이 밥을 굶으며 야근하는 촌극이 시작된 것이다.

때는 한겨울 밤, 추운데 배까지 고프니 이성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난 지 오래. 번쩍 손을 들고 따지듯 질문을 던졌다. “야근을 줄이라 하셨다는데, 그 말씀 전하시는 지금이 몇 시인 줄은 알고 계십니까?”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청와대는 예외입니다.”

스스로부터 예외임을 선언하고 시작한 일·가정 양립정책의 결과는 예상대로다. 1년 넘는 시간이 흐른 2017년 초여름, 대한민국은 여전히 야근 중이다.

지난 정부의 작은 에피소드를 새삼 되새김하는 이유는 주인이 바뀐 청와대에서도 예외가 될지, 선례가 될지 궁금증을 일으키는 풍경이 보이기 때문이다.

경복궁 역에서 담벼락을 따라 효자동 삼거리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걷다 보면 청와대 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본래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으로 사용되던 것을 개축을 거쳐 일반에 개방한 건물로, 국가 홍보와 역대 대통령 소개 자료 등을 만날 수 있고, 간단한 기념품 등도 구입할 수 있다.

외부에 훤히 노출돼 있지만 엄연한 청와대 부속건물인 이곳에서는 정부 산하단체 소속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요즘 청산 대상 1순위로 떠오른 ‘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청와대 내에는 국회와 정부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과 시설관리·환경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청와대에 비정규직이, 그것도 외부 조직에 속한 직원들이 파견돼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현 정부는 파악하고 있었을까? 무엇보다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관계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내부의 비정규직 현황을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청와대의 인력과 살림을 담당하는 총무비서관실이 현재 청와대 내부 직원의 고용 형태를 취합하는 중이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고, 이를 위한 예산 확보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이번 정부는 “청와대는 예외”라는 불통꼴통 보스가 아닌 솔선수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줄 모양이다.

아쉬운 점은 사회적 화두를 던지기에 앞서 스스로부터 돌아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대목이다. “비정규직 줄이라”며 기업을 몰아세우기에 앞서 “청와대에도 비정규직 OO명이 있고, 이러저러한 방법과 시간표로 이들을 정규직화한다”고 먼저 발표했다면 기업들의 혼란과 반발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청와대 비정규직’에 주목하는 이유는 너나 잘하라는 핀잔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체 어디까지가 비정규직이고, 정규직 전환 시에는 어떤 처우를 적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을 향한 갑작스러운 비정규직 축소 요구가 정당한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일단 접자. 대통령이, 그것도 취임 첫 작업으로 이것부터 하겠다니 그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청와대 스스로도 현황 파악과 방법 도출에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면, 기업 역시 뚝딱 해법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비정규직을 줄이지 않으면 과징금을 매기겠다는 징벌적 조치와 더불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보조금이나 세금 혜택을 주는 등의 장려책을 고려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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