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사청문회 검증 시 고려해야 할 3가지

입력 2017-06-0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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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회장

최근 인사청문회의 단골메뉴로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탈세 등이 올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이 사안들은 어김없이 문제가 되고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법 위반은 결격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인사청문회 때 공직 후보자에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에는 문제가 있어 개선할 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사청문회 검증 시 청문위원들은 국민들이 그 법을 도덕적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비롯해서 불합리한 법 여부, 법 위반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를 감안해서 면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법을 도덕의 기준으로 받드는가

어떤 법이 상식에 맞고 정당하고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국민에게는 도덕의 기준이 되고, 나아가 사회적 규범으로 정착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회적 규범은 특정 사회집단이 올바른 가치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규범으로 인정된 법은 많은 사람들이 그 법을 준수하고 법을 어기면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는다.

어떤 법이 사회적 규범으로 인정된 법인지 알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국민들이 그 법을 얼마나 준수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다음 사례를 보자.

한 번이라도 위장전입 한 사람이나 자기 집을 위장전입 장소로 빌려준 사람의 비율은 50대 이상 가구에서 몇%나 될까? 50%이상으로 추정된다.

2006년 이전에 구주택을 매입한 경우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비율이 99%로, 자영업자 중 탈세를 한 비율도 90%로 각각 추정되며 부모가 성인인 자녀에게 10년 동안 5000만원 이상을 증여하면서 증여세를 내지 않고 있는 비율도 상당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50대 이상의 국민들은 위장전입을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고, 2005년 이전에 구주택을 매입한 사람 모두는 다운계약서 작성을 부도덕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요약될 것이다.

실제로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 전입하는 것과 부동산투기 광풍이 분 1970~90년대에 부동산 투기를 위해 위장 전입하는 것은 고위공직자에서 서민들까지 유행처럼 번져 모든 국민이 죄의식 없이 했다.

필자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부자 중 상당수는 과거 법을 어기고 미등기 전매 등으로 부동산투기를 한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과거 사회 분위기는 부동산투기를 잘하는 사람을 영리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부러워했으니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이 저서 ‘담론’에서 한 말은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신영복 선생은 “다수가 힘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중책(衆責)은 불벌(不罰)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벌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처벌해야 하는 법은 법이 아닙니다”고 했다. 이는 국민들 다수가 법을 어기고 있다면 그 법은 정당성이 없는 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무슨 이유에서 법을 사회적 규범으로 인정하지 않고 지키지 않을까. 국민들이 법을 지키지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첫째, 고위공직자 등 위에서 법을 지키지 않고, 둘째, 유전무죄, 무전유죄처럼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지 않고 있으며, 셋째, 법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불합리한 법이며, 넷째 법을 위반해도 처벌수위가 낮거나 적발 확률이 낮고, 다섯째 법을 지키면 손해를 보는 현실 등 찾아보면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탈세도 예외는 아니다. 언론은 탈세를 맹비난하지만 다수의 사업자들은 성실납세가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성실하게 세금을 내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장부에 매출을 꼬박꼬박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금을 내면 바보가 된다.

대금을 현금으로 받아 매출액을 줄이거나 비율을 부풀려 신고해 탈세하는 사람이 사업자 10명 중 9명 꼴이다. 9명의 탈세자중 1명을 골라내 세무조사를 하고 세금을 추징하면 그는 “다 탈세하는 데 왜 나만 처벌하느냐”고 오히려 억울해 한다.

국민들이 세금을 스스로 잘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3가지 공평이 잘 지켜져야 한다.

첫째 동일한 소득에는 모든 국민이 동일하게 세금을 내야 하는 수평적 공평, 둘째 소득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수직적 공평, 셋째 국민이 낸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공공재로 국민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교환의 공평이 그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관광객들에게서 가능하면 달러를 받아 세금신고를 하지 않는 아프리카 탄자니아공화국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불합리한 법은 아닌가

국민이 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법이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횡행한 백골징포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법이 있어도 너무 많다.

이른바 ‘다운계약서’가 그런 예 중의 하나다. 2006년 이전에 기존 주택을 사는 사람은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에 따라 실거래 가격을 신고해야 했다.

신고하지 않을 경우 벌칙규정은 없었다. 그런데 지방세법은 시가의 30%수준인 지방세 시가표준액이상으로만 신고하면 허용했다. 즉 과세 표준 하한기준과 상한기준(취득가액) 사이에서 알아서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면 1억원 짜리 부동산을 매입했다면 과세표준을 3000만원을 신고한 사람은 과세표준이 3000만원이 되고, 1억원을 신고하면 과세표준이 1억원이 되는 것이다. 세금을 이처럼 요상하게 걷는 법령 때문에 법무사는 고객인 납세자를 위해 세법이 허용한 ‘절세권(시가의 30%인 시가표준액으로 신고)’을 행사할 수 있도록 다운계약서를 쓴 것이다.

납세자들은 다운계산서가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을 위반한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부동산등기는 공인중개사와 법무사들이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인사청문회만 열리면 다운계약서가 논란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고 지금도 생기고 있다. 이런 복잡한 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인사청문 당사자들은 의원들의 추상 같은 추궁에 “송구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2006년 이전에 기존 집을 사면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을 비난하는 것은 “책임이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같이 부당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불합리한 법이 어디 세법뿐인가. 부지기수다. ‘명예훼손죄’도 좋은 예이다. 대법원은 사실을 이야기 한다고 해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명예훼손죄가 된다고 판단했다.

극단으로 얘기한다면 사기꾼을 사기꾼이라고 해도 명예훼손죄 해당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 사실을 이야기했다면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 것과는 멀어도 한참 멀다.

검사 출신의 김용원 변호사는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라는 저서에서 “우리라 권력자들 중에는 남들 앞에 드러내기 싫은 치부를 가진 자 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법이 있는데 명예훼손죄다. 감방에 갈 각오를 하면서 권력자의 치부를 들춰낼 애국지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라고 일갈한 것을 보라.

필자는 2011년 2월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사회추진위원회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현 정부에서 공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는데, 공정한 법 집행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 법이 타당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법 중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법이 너무 많아 국민이 많이 반발하고 있습니다”고 발언했다.

법 위반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가

서울 종로의 귀금속상들은 어쩔 수 없이 탈세를 한다. 국내 금생산량이 턱없이 적어 밀수로 수요를 충당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정상으로 부가가치세를 신고한다면 밀수 금을 구입한 사실이 적발된다.

장사가 잘되는 대기업 백화점 등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브로커에게 리베이트를 줘야하고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노조간부에 뇌물을 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도처에 있는 수많은 ‘갑’에게 리베이트, 뇌물을 주지 않으면 거래를 할 수가 없다.

살기 위해서는 비자금을 만들어 뇌물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국의 숨어 있는 적나라한 얼굴이다. 그런데 비자금을 만드는 것은 형사처벌대상이 된다.

기업 경영진에겐 저승사자와 같은 배임죄도 있다. ‘자신이나 제3자를 위해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는 배임죄’ 해당한다. 그런데 고의성이 있는지, 손해가 발생했는지 분간하는 게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대법원도 오락가락한다.

법관에 따라 죄를 면할 수도 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배임죄는 권력기관이 기업인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요긴한 수단이 되도록 한다.

기업인들에게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사를 받고 기소를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 하나으로도 크나큰 손실을 입을 수 있는 만큼 평소 위험관리를 위해 권력기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법의 덫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

필자는 우리 국민 모두가 법의 덫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과 기성공한 기업인 등은 일반 국민보다 더 많은 탈법의 덫에 걸려 있다고 본다.

물론 검찰과 국세청 등 기득권을 사수하는 권력기관들은 덫에 걸린 모든 국민을 물지는 않는다. 자기 밥그릇을 줄이고 자기들의 권위를 비난하는 소위 ‘괘심죄’에 걸린 사람들만 물어뜯는다.

기득권을 혁파한다고 개혁을 외치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수사 내용을 자기편인 언론에 흘려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

이들의 힘의 원천은 불합리한 법, 애매모호한 법, 법해석과 법집행의 재량권 등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다. 그리고 이것들 대부분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기반한 것이다.

권력기관과 국회는 변신에도 능란하다. 참여정부 시절 많은 공직자들을 현미경 검증한다며 위장전입·다운계약서 작성이 낙마 사유라고 목소리를 높인 옛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 이후 위장전입-다운계약서는 관행이라며 감싸고 나섰지만 지금 낙마사유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보라.

현재의 여당이 야당일 때도 사정은 같았다. 그렇기에 함부로 개혁의 칼을 휘두르다간 오히려 이들의 제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처럼 법이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법이 국민들 사이에서 도덕적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공무원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불합리한 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하여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

인사청문회도 지금은 케이스별로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되 점차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선진국 수준의 인사청문회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출발점은 우리 모두가 법의 덫에 걸려 있고, 그 덫에서 빠져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세무조사를 받고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했다거나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고 위장전입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특정인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준 이상의 지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억지 잣대로 역량을 갖춘 공직 후보자를 매도하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할 때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진보하려면 국민의 지식과 교육수준이 먼저 높아져야 한다고 필자는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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