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불경기에 신음하는 서울 지하상가

입력 2017-06-08 11:05 수정 2017-06-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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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영세상인인데 지원액이 우리는 3억, 재래시장 396억…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것 참 말하기도 민망한데, 요 며칠 매출 장부예요. 한 번 보시겠어요?”

서울 명동 지하상가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며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양윤석 씨가 건넨 매출장부의 상당 부분은 텅 비어 있었다. “여기서 임대료라도 내고 버티려면 하루에 30만 원어치는 팔아야 돼요. 근데 지금 보세요, 화요일 3만 원, 월요일 5만 원, 일요일은 공치고….”

말을 잇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은 시에서 저리(低利)로 소상공인에게 융자해주는 제도가 있다 해서 명동 지하상가 상인들이 신청했더니, 58명 중에 2명 빼고는 신용등급이 너무 낮아서 신청조차 할 수 없다더군요.”

명동뿐 아니라 서울시내 6곳 주요 상권 지하상가는 현재 한계 상황에 이른 채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소공동 지하상가에서 장사하려면 ‘빽’이 있어야 한다’거나 ‘목동 아파트 2채를 팔아 명동 지하상가에 들어왔다더라’며 위세를 자랑하던 1970~80년대 지하상가 상권의 전성기에 비하면 극적인 몰락이 아닐 수 없다.

◇횡단보도 깔리고 외국인 줄고… “지하에 사람이 안 다녀요” = 지하상가 상인들은 횡단보도가 밉다. 횡단보도 증설은 지하상가 유동인구의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횡단보도는 계속 늘어왔으며, 앞으로도 늘 것이란 전망은 지하상가 상인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서울시내 횡단보도의 전체 개수는 2만3741개에서 3만3684개로, 길이(km)당 개수는 2.95개에서 4.1개로 증가했다. 서울시는 이미 2013년에 보행친화 도시를 선포했으며, 지난달엔 보행 고가공원 ‘서울로7017’을 개장한 데 이어, ‘광화문 보행전용광장’ 조성 계획을 선포하는 등 갈수록 지상 보행로 확충정책을 확고히 하고 있다.

지하상가 상인들은 그때마다 에스컬레이터 설치 등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서울시는 “5억 원에 육박하는 에스컬레이터 설치는 예산과 사업 타당성 문제가 있어 설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중국발(發) 사드보복이라는 악재까지 만나 매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온 ‘유커(游客·중국 단체 관광객)’의 발길마저 뚝 끊겨버리는 치명타를 입었다.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특화된 소공 지하상가의 경우 공실률이 10%에 이르고, 임대료가 연체된 점포의 비율이 50%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이다.

소공동에서 한국 민예품(民藝品)을 27년간 판매해왔다는 A씨는 “작년에 비해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진 수준인데, IMF 때도 이렇지 않았다”며 “양지에서는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는데, 음지인 이곳에선 지금 같은 불황을 처음 겪어본다”고 말했다.

◇임대료는 꾸준히 상승… 서울시의 ‘가렴주구(苛斂誅求)’ = 극한에 달한 지하상가의 불황 속에서도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거둬가는 임대료는 오히려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의 경우 2013년과 2014년 임대료가 현행 임대차보호법의 상승 상한선인 9%씩 올라 상인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소공동 지하상가의 임대료도 2012년부터 올해까지 최고 4.5%가 오르는 등 한 차례의 동결이나 하락 없이 꾸준히 상승해 왔다.

상권의 몰락과 관계없이 임대료가 오르는 까닭은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임대료를 산정할 때 주변 토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매년 상승하는 공시지가의 특성상, 이를 기반으로 산정한 임대료도 해마다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와 시 산하 시설관리공단 측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 임대료 책정 방식은 현행법에 의거한 방안이며, 공시지가의 감정평가에 시 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으므로 객관적인 임대료 책정 방식”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지하상가 상인회 관계자는 “적법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 지하상가 운영 실정에 비해 임대료가 과도하게 책정돼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 씨는 “서울시나 자치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한다고 민간 사업자들에게 임대료 억제 정책을 유도하면서, 서울시 산하 시설관리공단은 지하상가로부터 해마다 임대료를 올려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책 사각지대 지하상가… 재래시장과 지원예산 130배 차이 = 지하상가 상인들은 다른 지상의 영세 소상공인에 비해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내 전통시장에 대한 국비 지원금액은 396억 원이었다. 하지만 같은해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상가활성화팀이 지하상가에 지원한 금액은 2억9000만 원에 불과했다. 지하상가 상인과 전통시장 상인 모두 비슷한 규모의 영세상공인임에도 양측에 지원된 금액이 130배가 넘게 차이나는 것이다.

이는 서울시가 지하상가를 ‘상점가’가 아닌 ‘보행시설’로 인식하는 관점과도 연결돼 있다. 서울시내 소상공인에 대한 주무부처는 경제진흥본부의 소상공인지원과인데, 지하상가 관련 업무의 주무부처는 안전총괄본부 보도환경개선과다. 자연히 골목 상권이나 전통시장 등에 비해 소상공인 지원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상가 업무를 소상공인지원과에서 맡아야 된다는 논리라면, 서울시내 상업활동이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업무가 소상공인지원과에 몰리게 된다”며 “현행 제도에서도 지하상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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