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 ‘저승사자’로 불리며 재벌 개혁에 앞장서 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본격 등판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이 내정 발표 직후 “순환출자가 재벌 경영권 승계에 역할을 하는 그룹은 현대차뿐이다”며 현대차를 ‘콕’ 집은 탓이다.
김 위원장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경제력 집중 억제와 지배구조 개선에 재벌 개혁의 방점을 찍은 문재인 정부에서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는 이른 시일 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기존 순환출자를 금지시키는 공정거래법이 통과되면, 가뜩이나 오너가의 지분율이 낮은 현대차의 경우 순환출자 과정에서 지배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순환출자 해소에 나선다 하더라도 막대한 자금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 역시 상속세 납부 등의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대차는 △지주회사 요건 강화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금산분리 △스튜어드십 코드 △상법개정안 등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안과 관련해 어떤 부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업계와 시장에서는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며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각종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순환출자 고리 끊어야… “시기상의 문제일 뿐” = 현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로 연결돼 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이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되면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그룹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구체적인 지분율을 살펴보면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 33.8%를, 기아차가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0.78%를 갖고 있는데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6.96%와 현대차 지분 5.17%, 정 부회장은 현대차 지분 2.28%와 기아차 지분 1.7%만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순환출자 구조는 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사옥 부지에 10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끌어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동시에 지배력 강화에까지 나서야 하는 이중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이에 정 부회장이 기아차로부터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매입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오너 일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지배구조가 단순해져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무려 4조 원에 달하는 비용을 정 부회장이 부담해야 한다. 또한 기아차와 현대모비스의 주식가치 차이로 기아차 주주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순환출자 규제 강화의 불확실성으로 현대차그룹의 현재 지배구조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며 “삼성, 롯데 등 이미 대부분의 그룹들이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축소작업을 상당 부분 진행 완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증권가 “지주회사 설립 방안 유력할 것으로 전망” = 이에 지주회사 설립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지주회사 설립과 관련해서는 3가지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우선 현대모비스의 지주사 전환 방안이다.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오너 일가가 사들이고 현대모비스 사업회사는 지주회사가 매입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를 오너 일가→현대모비스 지주회사→현대모비스 사업회사→현대차→기아차로 바꾸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은 약 4조9000억 원가량이며 오너일가가 부담하는 비용은 1조2000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증권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의 단독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설립도 가능하다. 현대차를 인적분할하고 오너일가가 현대모비스로부터 현대차 홀딩스 지분 20.8%를 매입하고, 현대차 홀딩스는 현대차 사업회사 지분 20.8%를 매입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현대차에 대한 높은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금융계열사의 지분 해소가 필요하다. 또한 현대차 홀딩스와 기아차의 비용 부담도 문제다. 현대모비스가 보유한 현대차 지분 20.8%의 지분가치가 7조 원에 달해 양도소득세도 상당할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현대차그룹이 계열사 인적분할을 선택할 경우 현대차보다는 현대모비스의 인적분할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를 각각 계열사 지분 보유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계열사 지분 보유 투자회사를 합병해 지주사를 설립하는 것도 시장에서 거론되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유력 시나리오지만 합병 시점 오너일가의 지배력 공백이 한 달 내외가량 생길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공백 기간 동안 오너일가는 5.8%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해야 한다. 이 기간 외국인 주주의 홀딩스 지분은 약 40%를 초과하게 된다.
주총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3사의 주주총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각 계열사 주주들이 분할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합병에는 부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할비율과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3사 주주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럼에도 3사 분할합병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본다”며 “(현대차 등 3개 회사를 분할 및 통합한 뒤 만든) 지주회사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하거나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해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이 그 다음 절차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