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유럽정상회의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영국 총선 패배 후 힘 빠진 메이가 꺼낸 카드에 유럽정상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메에 총리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업무 만찬에서 “현재 영국에 합법적으로 머무르는 300만 명의 EU 회원국 국민 중 어느 누구도 2019년 3월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시점에 영국을 떠날 것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라며 “공정하고 진지한”제안을 했다. 또 영국에서 5년 동안 거주한 EU 회원국 국민에게 보건과 교육, 복지 연금 등에서 영국인에 상응하는 영원한 권리를 부여하는 ‘정착 지위’를 부여하겠다고도 했다. 기준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영구거주 자격의 부여 여부가 갈리는 만큼,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메이 총리는 5년의 기준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을 26일 공개할 예정이다.
메이 총리가 이날 언급한 EU 회원국 국민의 영국 내 법적 권리는 영국 정부와 EU 측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브렉시트 협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이 총리가 유럽정상회의에서 총선 이후 흔들린 브렉시트 협상 주도권을 되찾겠다며 EU 정상들에게 선제안에 나선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날 유럽정상회의는 이달 초 메이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총선에서 참패 한 이후 처음으로 메이 총리가 유럽정상들과 대면하는 자리였다. 즉 총선의 패배로 위축된 상황에서 브렉시트 협상상대 27개국을 마주한 것이다. FT는 이날 메이 총리의 제안이 메이 총리의 불안한 현 상황을 감춰주지 못했으며 이에 외교가에서는 영국 의회가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된 상황에서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정세를 이끌어나갈 능력을 입증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헝 의회는 과반 의석을 점유한 정당이 없는 의회를 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영국 의회 내부에서는 브렉시트 결정에는 이견이 없지만 유럽 정상들 사이에서는 메이 총리의 총선 패배로 영국이 브렉시트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폴란드 총리 재직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기적이나 내 정치적 꿈이 현실이 되기도 했다”면서 “모든 것에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정치에 있어서 최고의 부분”이라고 말했다. 레오 바라드카드 신임 아일랜드 총리 역시 “영국에 문은 항상 열려있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EU나 관세동맹에서 떠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메이의 돌발 제안을 언짢아하는 정상들도 있었다. 한 독일 고위 관계자는 메이의 이날 제안에 대해 “일방적인 설명”이었다고 지적했다. 투스크 의장은 “유럽정상회의는 브렉시트 협상무대가 아니다”면서 브렉시트와 관련된 메이의 언급을 차단했고 이에 메이 총리는 이날 저녁 회동 마무리 끝에 가진 티타임에 짧게 해당 제안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