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내 몸엔 여행의 피가 흐르고 있다

입력 2017-07-0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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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여행 떠난다는 사람들의 전화가 많다. 유럽으로, 실크로드로 모두 분주히 가방을 챙기고 있겠다. 그래, 지금은 떠나는 시간이지. 그러나 그 전화를 받는 나도 떠나고 있다. 집에서도 사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거니까.

“또 여행이에요?”

딸들과 함께 시장을 보거나 백화점 쇼핑을 할 때 딸들이 하는 말이다. 나는 모자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안경을 사거나, 하다못해 양말 한 켤레를 살 때도 반드시 한마디 덧붙이는 말이 있다.

“여행 갈 때 좋겠다.”

여행을 매일 떠나는 사람도 아니면서 왜 늘 여행타령을 금치 못하느냐고 딸들이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러면서 작은 소품 하나를 살 때라도 요즘은 딸들이 선수를 친다. “여행할 때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웃는다.

그렇다고 나는 여행이 많은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 밖으로 도망치는 것은 지방으로 원고를 메고 가는 경우이고, 먼 여행이라는 것은 고작 여름이면 문우(文友)들과 떠나는 해외여행이나 문학행사로 떠나는 게 모두라고 할 수 있다. 많으면 두 번 아니면 한 번일 때가 많다. 그런데 왜 나는 늘 여행이 마음속에 흐르고 있을까.

여행에의 동경, 그리고 여행에의 꿈이 내 피에는 흐르고 있는 것일까. 집안 정리를 하다 여행 가방이 눈에 띄면 발가락이 움찔한다. 어디에라도 가려고 짐을 싸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끓게 한다. 금방 공항이 떠오르고 기내(機內) 커피가 떠오르고 낯선 거리가 넘실거린다.

누구나 그럴지 모른다. 막연하게 하늘을 바라보다가 울컥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일상에서 하염없이 고단한 사람들, 감정노동이 자신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나만 고통스럽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 어딘가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 아픈 사람이 아니라도 그냥 사람들은 더운 여름날 갑자기 시원한 바람을 그리워하듯 낯선 나라를 향해 비행기에 몸을 올리고 싶은 게 아닐까. 그렇다. 이 나이에도 변치 않는 게 여행에 대한 설렘이다. 여행은 지루하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감격이 함께 있으며 다시는 못 볼 풍경들을 볼 때면 울컥하기도 한다.

여행은 살아 있게 하고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문득 새로운 인생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인생의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떠남으로써 생각이, 몸이 새로워진다는 것은 축복이리라. 그러면서 슬그머니 집 걱정을 하는 일,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가끔 먼 나라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도 좋다.

그렇다. 상대방이 아니라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이 편하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혼자 살면서 글을 쓰기 위해 왜 굳이 집을 떠나느냐고? 모르는 소리다. 집에 있으면 좁은 누옥(陋屋)이라도 치우고 옮기고 닦고 그렇게 거슬리는 것이 눈에 많이 띈다. 우편집배원도, 택배기사도, 우리 동네 반장도 벨을 누른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청승을 떨며 자신도 만족하지 못하는 꼴사나운 글을 쓰기 위해 새벽 어둠 속에서 시동을 걸었던 때가 많았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순간 나는 여행이다. 사람의 날개는 그 순간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머릿속은 잡다한 물고기가 노는 바다가 되고 나는 낚시꾼이 된다. 월척(越尺)은 어렵겠지만 시(詩)의 미꾸라지 하나라도 잡으면 그만이다. 떠난다는 것, 그것은 설렘이며 황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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