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사문화의 새 진로

입력 2008-01-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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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경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 중의 하나가 노동운동문제다. 그 중에서도 노동조합 활동과 그 행태가 매우 중요한 경제 변동요인으로 작용해왔다.

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그동안 억압받았던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근로자의 권리가 꾸준히 신장됐다. 그러나 일부 노조는 불법 파업이나 과격 폭력 활동으로 사업장을 황폐화하거나 조업을 방해해온 것도 사실이다. 과격 좌파 노조는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면서 노사간 대립구조를 형성했다. 그들이 기업과의 적대관계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과격 노조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4년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수는 1천4백62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근로자수는 한국노총 83만1천여명, 민주노총 67만3천여명, 상급단체 미가입 4만4천여명 등 모두 1백55만여명으로 전체의 11% 수준이다. 즉 근로자 10명 중에 1명이 노조에 가입한 셈이다.

이 통계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근로자 전체가 아니라 겨우 10% 남짓한 소수에 의해 주도되고 이들 소수의 권익을 위해 대변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전국적인 파업을 주도하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전체 임금 근로자의 4%를 조금 넘는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서도 파업을 주도하는 좌파 계열의 현장파 노조원과 그 주변 노조원 수는 다 합해도 18만명을 조금 넘는다. 이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1.2%에 해당한다.

이 1%가 나머지 근로자 99%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 1%는 거의 대기업 노조원들이다. 즉 대기업 노조 출신 중 일부가 그것도 전체 근로자의 1%밖에 되지 않는 소수가 산업현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게 오늘의 노동운동 현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소수가 산업현장의 노동운동 방향을 잘못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운동은 노사가 서로 협력하고 조화하는 가운데 서로 상생하는 길로 가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과격파들은 노사관계를 적대관계로 간주, 폭력과 투쟁으로 그들의 주장을 사측에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불법과 탈법을 해서라도 적대적인 사측과 투쟁하는 것을 제일의 행동원칙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들이 가는 사업장마다 불법파업과 탈법 행위가 횡행한다.

그들은 왜 이처럼 무법행동을 일삼고 과격한 행위를 보일까. 첫째, 민주화 이후 노조를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잘못돼있는데서 출발한다. 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때 시민들은 그들이 그동안 억압받던 사회적 약자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이 폭력을 동반하고 위법 행위를 밥먹듯 해도 그간의 감정이 쌓여서 그렇겠거니 하고 관대하게 넘겼다. 그들이 계속 위법•탈법 행위를 하는데도 시민들은 그런 행위를 관대하게 본 게 탈이었다. 더구나 과격 노조는 좌파적 색채까지 보였다.

노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지금은 경우에 따라 경영자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서 사업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하면, 정치•사회적으로도 이미 유력한 압력단체로 자리잡았다.

두 번째, 불법, 탈법을 일삼는 노조활동에 대해 정부가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는데 소극적이었다. 또한 기업들도 노조의 그런 행위를 어물쩍 넘겨버리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서 사태를 더 키웠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과격 불법 노조에 대해 오히려 정부가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고무된 노조는 더욱 과격한 행동을 나타냈다. 사측은 이런 노조에 적절히 대응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객관적 견지에서 볼 때 무리한 요구를 연례적으로 사측에 제기했다. 그리고 사측과 마찰을 벌이면서 불법 파업을 벌였다. 사측은 최근 몇 년 동안 항상 노조측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 문제는 다른 외국 자동차제조사들에 비해 생산성은 현저히 낮은데도 근로자 처우는 오히려 더 나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일하지 않으면서 임금은 자꾸만 더 받으려 한다. 그리고 회사측에서 말을 안 들어주면 노조는 불법파업을 벌인다. 이게 현대자동차 노조의 현주소다. 필자는 현대자동차 노사관계가 앞으로 현저히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차라리 문을 닫는 게 좋다는 견해를 강하게 갖고 있다. 현 상태의 현대자동차는 국민경제에 큰 짐이 될 뿐이다.

그들이 개선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적법한 범위 내에서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임금 수준에 걸맞는 노동생산성 향상을 실현해야 한다. 두 번째, 사측은 노조가 불법 파업을 벌이면 철저하게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간 사측은 어물쩍하며 이 원칙을 스스로 포기했다.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제 노사 모두가 서로 협력하는 상생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여기에 정부가 우리 경제사정에 맞는 노동정책을 새로 입안해서 시행한다면 노동시장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얼마나 불안정한가는 외국 기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보고서’ 내용을 보면, 한국의 노사관계 경쟁력은 2003년 이후 올해까지 5년 동안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매년 꼴찌를 기록했다. 참으로 창피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이 때를 맞아 민간부문에서도 이제는 건전하고 조화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노조는 물론 사측도 일방적인 이해득실관계를 떠나 어느 것이 기업과 노동자를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 길인지 진솔하게 숙고해야 할 때다.

새 정부 역시 반드시 이루어야할 노동시책들이 있다. 비정규직 해결과 노동 양극화 현상의 해소 또는 완화다.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및 취약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치는 단순히 그들을 보호한다는 차원을 넘어 사회복지 차원의 문제다. 이들을 구제하는 정책을 반드시 새정부는 이뤄내야 한다.

정부가 이뤄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노동 양극화 현상 해소문제다. 대체로 전체 근로자의 10% 정도가 임금과 사업장 환경이 양호한 500인 이상 대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나머지 대부분은 임금 수준이 낮고 환경이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그것도 비정규직이나 일일 임용직 등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고용조건 격차 완화, 양질의 일자리 확대, 적대적 노사관계 해소 등에 일관성 있는 노동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을 제약하는 주요요인으로 작용하는 노사문제가 새해에는 더 이상 경제 발전에 발목잡는 장애요인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새로운 노사문화 재정립이 그 어느때보다 요구된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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