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51. 진혜대사(眞慧大師)

입력 2017-07-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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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최초 ‘대사’ 승직 받은 비구니

진혜대사(眞慧大師·1255~1324)는 양천 허씨로, 아버지는 수상을 지낸 허공(許珙), 어머니는 윤관 장군의 후손인 파평 윤씨이다.

14세에 역시 명문가인 언양 김씨 가문의 김변(金賆)과 혼인했다. 그녀는 4남 3녀를 낳았는데, 늘 자식들에게 “남자가 삼가고 경계하지 않으면 음험하고 부정하게 되며, 여자가 삼가고 경계하지 않으면 도리에 벗어나고 편벽해진다”고 말했다.

47세 때인 1301년에 재상이었던 남편이 사망하자 감응사(感應寺)를 지어 남편의 명복을 빌었으며, 집안의 재화와 보물을 모두 털어 금과 은 글씨로 불경을 사경(寫經)하는 등 많은 불사(佛事)를 일으켰다. 이후 그녀의 삶은 구도(求道) 생활로 집약된다.

1302년에 중국에서 무선사(無禪師)가 오자 찾아가 법요(法要)를 들었으며, 1304년에 철산화상(鐵山和尙)이 강남에서 오자 나아가 대승계(大乘戒)를 받았다.

1311년에는 미륵대원(충북 미륵사지로 추정)에 가서 부처에게 예를 올리고, 여러 산천을 순례하면서 열반산(위치 미상)과 청량산(경북 봉화군)의 성스러운 유적지까지 다녀왔다.

61세 때인 1315년에는 마침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법명을 성효(性曉)라 했다. 승려가 된 뒤에도 그녀의 성지 순례는 계속되었다. 1316년에 양산의 통도사에 가서 사리 12매를 얻고, 계림으로 가 장관(壯觀)을 마음껏 보고 돌아왔으며, 이 외에도 다닌 산천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66세가 되던 1320년에 장남의 집 근처인 개성 남산의 남쪽에 초당(草堂)을 짓고 머무르다 1324년에 병이 들어 세상을 뜨니 향년 70세였다. 담당 관리가 부음을 알리자 왕은 그 절의가 한결같음을 찬탄하고,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 진혜대사’로 추봉하였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승려가 되었음에도 그녀가 원래 갖고 있던 ‘OO부인’이라는 봉작명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그냥 ‘진혜대사’가 아니라 ‘변한국대부인 진혜대사’이다. 이는 결국 여성의 수도를 종교적인 성취보다 수절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사고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녀의 삶 자체에서도 소위 ‘부덕(婦德)’이 넘쳐난다. 속세에 있을 때는 좋은 아내이자 훌륭한 어머니였고, 비구니가 되었음에도 늙고 병들자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맞춰 아들의 집 근처에 머물렀다.

한편 그녀가 받은 ‘대사’는 고려시대에 남자 승려들이 승과에 합격한 후 받는 ‘대덕(大德)’보다 한 단계 위의 승계(僧階)이다. 사후에 주어진 것이라 한계는 있지만, 고려 500년을 통해 비구니로서 대사 벼슬을 받은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자료가 없어 그녀의 종교적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길은 없지만, 적어도 대사라는 벼슬을 내려줄 만큼 그녀의 불교적인 행적이 볼 만한 것이 있음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진혜대사는 고려시대 불교에서의 여성의 위상과 한계를 잘 보여준다 하겠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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