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형 오피스 빌딩의 공실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대기업 이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공실이 충분히 메꿔질 만큼 수요가 충분치 않은 데다, 여의도는 장기적으로 공급 과잉 우려까지 안고 있어 불꺼진 사무실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7.9%로 줄었던 종로·을지로(CBD) 일대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 1분기 8.2%로 오른 데 이어 2분기 9.2%로 또다시 확대됐다. 지난해 말 가까스로 7%대까지 내려 앉은 공실률이 9%대로 재진입한 것이다. 서울 주요 3대 권역(강남·종로·여의도)의 2분기 평균치인 8.4%를 웃도는 수치다. 강남권의 안정적인 공실 흐름에도 서울 전체 공실률이 상승하는 이유다.
△종로·을지로 지역 대기업 이전 활발 = 2분기 도심에서는 SK건설이 임차했던 파인애비뉴A 빌딩 전체가 임대시장에 공급됐다. 이 자리에는 신한카드 본사가 이전해 와 공실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LG그룹 계열사도 서울스퀘어 빌딩에서 LG서울역 빌딩으로 이전한 뒤, 그 자리에는 SK플래닛과 합병한 11번가가 둥지를 틀었다. CJ올리브네트웍스도 트윈시티 남산으로 5개 층을 추가 임차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NH농협생명 빌딩에서 T타워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종로·을지로의 2분기 공실률은 지난해 말에 비해 1.3%p 늘어났다. 일부 대기업 계열사가 도심으로 들어와 빈 사무실을 어느 정도 메꿨지만, 빈 면적을 바로 해결할 만큼 임차 수요가 크진 않아 공실률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도심권의 빈 사무실이 앞으로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종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이 용산 신규 사옥으로, 하나은행은 올해 하반기 신규 사옥으로 이전한다. 이들 기업이 임차해 있던 시그니쳐타워와 그랑서울 일부의 공실이 예고된 셈이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한국지사 황점상 대표는 “도심 공실률은 추후 예정된 주요 기업의 본사 이동으로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유오피스 덕 보는 강남권 = 종로·을지로 등 도심이나 여의도와 달리 강남권역(GBD)의 공실률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강남권 빈 사무실이 증가하지 않는 것을 공유오피스의 확산 덕분으로 해석하고 있다. 넓은 면적의 오피스를 임대해 쪼갠 뒤 작은 오피스로 재임대하는 공유오피스는 현재 강남권에 주로 밀집한다.
실제 공유오피스 업체 위워크(WeWork)는 지난해 강남역에 위치한 홍우빌딩에 1호점을 냈고, 내달엔 삼성역에 3호점을 연다. 특히 3호점이 열리는 테헤란로 일송빌딩은 빌딩 명칭까지 위워크빌딩으로 변경됐다. 위워크가 입주한 빌딩에 자사 이름을 붙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의 영향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테헤란로 파르나스타워의 공실 해소도 이번 분기에 두드러졌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신세계프로퍼티, 카카오프렌즈 등이 잇따라 임차계약을 체결했다. 법무법인 율촌까지 임차를 결정하면 남은 공실 대부분이 해소된다. 그러나 강남권역도 연면적 8만㎡ 규모의 마제스타시티의 준공이 완료된 만큼 공실 우려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공실 공포 고개드는 여의도권역 = 신영에셋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종로·을지로권역의 공실이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조사에선 여의도권역(YBD)의 공실이 종로·을지로 지역을 웃돈다. 특히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준공을 앞두고 기업들의 대규모 이동이 예정돼 있어 여의도권역의 공실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현재 전경련회관 빌딩에 입주하고 있는 LG CNS가 마곡지구로 이탈할 경우 14개 층, 약 7000여 평 규모의 공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8%대 중반의 서울 오피스 공실률이 연말엔 두 자릿수로 급등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여의도권에선 내년 초 8만㎡ 규모의 교직원공제회빌딩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2020년께엔 33만㎡ 매머드급 규모의 파크원, 5만㎡의 KB국민은행 통합사옥 등이 완공된다.
부동산 서비스기업 관계자는 “서울 오피스 시장의 경우 작년 말까지 수요가 공급을 어느 정도 흡수했지만, 올해 들어 시장 상황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하다”며 “당분간 공급량이 급증하면서 서울 오피스 시장이 단기간에 회복세로 돌아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